‘소크라테스의 변론’과 우리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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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론’과 우리의 숙제
  • 한들신문
  • 승인 2020.10.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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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나훈아의 테스 형!’이 장안의 화제다. 가사는 이렇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코로나-19 상황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추석 연휴의 공중파 방송을 통한 콘서트는, ‘가황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가수 나훈아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덧붙여져 전례 없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방송 이후 그의 신곡 테스 형!’에 대한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노래는 또 노래로서 즐기면 그만인데 공연 도중 언급된 세상과 정치에 대한 그의 발언에 대해서 아전인수식 정치적 해석들도 잇달아서 씁쓸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소크라테스가 문제다. 대중가요에 등장한 소크라테스는 그야말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툭 내뱉고 간 사람이지만 정치권의 논란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활동과 역할에 대해 자기 자신의 처지를 빗댔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발언에 대한 시비 논란이다. 어떤 것이든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 수준에서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2500년의 시간적 간극을 넘어서서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감수하고도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논란에 또 하나의 평가를 들이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 것이므로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로 듣는 것이 필요한 때다.

우리가 들어야 할 테스 형!’의 목소리는 그가 얘기한 진실의 목소리. 역사상의 소크라테스와 그의 사상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소크라테스 자신이 쓴 글이 있는 게 아니라 그의 생애, 철학에 대한 지식은 그의 제자들과 당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수제자인 플라톤의 기록 저작의 하나인 <소크라테스의 변론>2500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가슴을 울린다.

그가 누구인지 굳이 이름을 댈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는 정치가였는데, 나는 그를 시험해보고 다음과 같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테나이인 여러분,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많은 사람에게, 특히 그 자신에게 지혜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지혜로워 보이기만 할 뿐 사실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자 했지요. 그 일로 인해 나는 그 사람에게,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들에게 미움을 샀습니다. 그곳을 떠나며 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분명 저 사람보다는 더 지혜로워. 우리 둘 다 뭔가 훌륭하거나 특별한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적어도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변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 앞에서도 진리를 위해 죽어갔다. 그가 추구했던 것은 아테네 시민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것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깨닫는 일, 그리고 알지 못하는 것을 대화를 통해 서로 깨우쳐가는 일, ‘테스 형!’을 부를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이 가을에 읽어 그의 원음을 듣는 일, 2500년 전의 소크라테스가 오늘의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의 무지를 깨달을 그때야말로 소크라테스를 두고 다투는 우리의 어리석음도 걷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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