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환경]생태위기의 극복은 공생(共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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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환경]생태위기의 극복은 공생(共生)
  • 한들신문
  • 승인 2020.11.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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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문화연구소 소장 백종숙

가을이다. 무서리 내린 날, 길가에 노랗게 떨어진 그 많던 은행잎은 어디로 갔을까?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은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낮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긴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이효석 낙엽을 태우며”)

1938년 이효석의 가을은 낙엽을 태우는 연기로 가득한 낭만이 있었다. 그로부터 100년도 안 된 지금, 우리는 낙엽을 태우며라는 글을 읽으며 앞 세대의 낭만을 그저 상상할 뿐이다.

개발과 혁신, 진보라는 이름으로 과학은 우리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해 주었다. 우리는 삶을 더 편리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가져왔다. 인간은 자신만을 위해 대규모 삼림벌채로 농토를 만들었고,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한 방목은 초원을 사막으로 변모시켰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동차, 쾌적한 냉·난방시설, 최신 전자제품, 매일 식료품을 사고,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면 할수록 더 편리한 세상, 우리는 이런 것에 익숙해져 있다. 지구라는 자연생태계에 의존하여 살아왔지만, 우리는 자연생태계에 아무것도 갚지 않았다. 그 결과 지구는 스스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사회생태학자 최재천은 <호모 심비우스> 책에서 인류가 문명을 시작하기 이전에 야생동물로부터 인간을 보호했던 두 동굴 이야기를 소개한다. 한 동굴은 배설물을 동굴 안에 배출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동굴 안 가족은 규칙을 지키며, 주기적으로 동굴을 청소하였다. 동굴은 가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반면에 또 다른 동굴에서는 서로가 편리한 대로 배설물을 버리고 청소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동굴은 오염되어 가족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들은 다른 동굴을 찾아 떠나야 했다. 최재천은 두 가족 중 어떤 가족이 인류와 닮았느냐고 묻는다.

동굴 이야기처럼 더 살 수 없을 때 이주할 새로운 동굴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지구는 하나뿐인 삶의 터전이다. 최재천은 지구의 모든 생물체가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함께 살길은 새로운 인간형인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호모 심비우스는 생물학적 용어로 생물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살아가자는 것, 공생(共生)이다. 공생을 뜻하는 ‘symbiosis’는 고대 그리스어 ‘syn(함께)’biosis(, 사는 방식)의 합성어이다. 그가 희망하는 21세기형 인간은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공생하는 인류이다.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환경오염 행위를 생태적 죄로 규정하고 이를 천주교 교리에 포함한다고 선언하였다. ‘하느님, 다른 사람들, 공동체, 환경에 반하는 행동이나 태만은 생태적 원죄이므로 생태적 회개를 촉구했다.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 대한 생태적 전환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에 살았던 한 인디언 추장이 했던 말처럼 지구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적 활동이 기후변화를 가져왔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은 자업자득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생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환경에 대한 생각과 삶의 방식 전환이 필요하다. , 다른 생명과 공생하는 생태적 전환이다. 이것이 곧 아름다운 별, 지구에서 인류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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