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이야기 5]우리가 문제를 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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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 이야기 5]우리가 문제를 대하는 방법
  • 한들신문
  • 승인 2020.12.0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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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초 교사 이미화

오늘 아침 활동은 <미덕> 쓰기, 정목이와 건우는 안 하겠다고 한다. 어제 아침의 일이 오늘로 이어지고 있었다.

어제 아침, 3~5학년이 강당에서 연극 연습을 하는 바람에 우리 반 아침 활동인 <강당 놀이>를 못하게 되었다. 건우는 강당에 못 가는 대신 운동장 나가서 축구를 하자고 했다. 수요일은 전교생이 책 읽는 날이다. 아무리 우리 반 계획에 따라 아침 활동과 책 읽기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해도 수요일 아침에 운동장 나가서 축구를 하는 것은 마음 불편한 일이었다.

오늘 운동장 나가서 축구하는 거는 좀 마음이 불편해요. 내일 아침 활동인 <미덕> 쓰기를 오늘 하면 내일은 운동장 나가서 축구하는 거 괜찮아요.”

싫어요.”

건우가 말했다. 다른 학생들은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결국 어제 아침에는 축구도 못 하고 미덕 쓰기도 못했다.

 

오늘 다른 학생들은 미덕 쓰기를 하고 있지만, 건우와 정목이는 저글링 공으로 장난을 치다가, 뒤쪽 매트에서 레고를 한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덕 쓰기를 지금 하지 않으면 오늘 남아서 해야 합니다.”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건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할 거예요.”

나는 창피한 느낌이 들면서 살짝 화가 나려고 했다. 건우는 내가 무언가를 지적하면 계속 말대답을 해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건우와 나 사이만 나빠질 때가 많았다. 그런 건우를 보면서 정목이 태도가 장난스러워지곤 했다. 언젠가부터 내가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도 학생들에게 중요한 배움 거리가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오늘은 다른 방법으로 풀어보기로 했다.

 

나는 <감격해>카드를 들고 매트로 갔다. <감격해>카드는 갈등 상황에서 자기감정을 나타낸 카드를 찾고, 그에 필요한 격려카드를 찾아 이야기 나눈 후,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카드다.

그럼, 이 카드 중에서 지금 자기 마음을 잘 나타낸 카드를 찾아봅시다.”

정목이는 <화남>카드를 고른다. 축구를 못 해서 화가 난다는 것이다.

건우는 카드에는 관심 없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고,

밥 주세요.”

건우는 아침을 안 먹고 올 때가 많아 배고프다고 하면 에너지 바를 주곤 했다.

그럼, 건우는 <간절함> 어때?”

건우는 귀찮다는 듯

좋아요.”

나는 <불편함>을 골랐다.

어제 미덕 쓰기를 했으면 오늘 축구를 할 텐데, 어제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오늘은 미덕 쓰기를 안 하겠다고 하니, 마음이 좀 불편해요.”

다음으로 우리는 격려카드를 골랐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많이 속상했지?>, <심심하면 언제든 이야기해. 내가 놀아줄게>였다. 격려를 담은 글귀들 때문인지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이제 해결방법 카드를 골랐다. 건우는 <회복하는 시간 갖기>, 정목이는 <해결책 서로 이야기하기>, 나는 <서로 미안한 점 사과하기>를 골랐다.

우리, 회복할 시간은 충분했던 거 같지요?”

.”

정목이가 고른 <해결책 서로 이야기하기>를 시작했다.

그럼, 정목이가 축구를 못 해서 화났다고 했잖아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12월까지 계속 강당에서 연극 연습을 해서 수요일 강당 놀이는 못할 텐데요.”

수요일에 미덕 쓰기 하고 목요일에 운동장 나가서 축구해요.”

오늘 동아리 시간에 컵 쌓기 하고 나서 축구해요.”

축구를 하지 못해서 화가 난다던 정목이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나는 건우에게는 얘기 다 끝나고 나면 에너지 바를 주겠다고 했다. 건우의 간절함도 해결이 되었다. 이제 나의 불편함을 다룰 차례다.

그런데 오늘 안 한 미덕 쓰기는 언제 할 거죠?”

정목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100일 후라고 말하자, 건우가

아니 아니, 오늘 숙제로 할게요.”라고 말했다.

 

이제 미안한 점에 대해서 사과하기 차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한 것이 없어요.”

그럼 우리도 없어요.”

강당 사용하는 것이 겹치게 된 것은 미안해요. 여러분이 수요일에 강당에서 운동하는 것을 참 많이 기다렸을 텐데요.”

우리도 좀 미안해요.”

미덕 쓰기 안 하려고 한 것, 미안해요.”

 

이제 기분 좋게 공부할 수 있었다. 국어 공부는 쉬는 시간도 없이 했다. 정목이가 아이, 쉬는 시간…….’ 그랬지만 건우는 그냥 해!’ 했다. 동아리 시간, 컵 쌓기 후 축구할 때도 많이 웃었다. 1학기에는 아이들이 두 그룹으로 나눠져서 놀 때가 많았고, 그것에 대한 불만도 좀 있었는데, 이제 다 같이 노는 것이 많이 자연스럽다.

하루하루 빛깔이 조금씩 다르다. 오늘 아침에 건우와 정목이에게 화를 내고 내가 원하는 쪽만 고집했다면 어떤 하루가 되었을까? 오늘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가진 것 같다. 문제는 문제 그 자체보다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중요하다. 문제는 우리에게 배움이 기회가 된다. 또한 학생들은 내가 하는 말만큼이나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그 자체도 유심히 지켜보면서 배운다. (20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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