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그리움의 향기를 오래도록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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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그리움의 향기를 오래도록 읽고 있습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0.12.0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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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염민기, 시인

엄마 무릎

임길택

 

귀이개를 가지고 엄마한테 가면

엄마는 귀찮다 하면서도

햇빛 잘 드는 쪽으로 가려 앉아

무릎에 나를 뉘어 줍니다.

그러고선 내 귓바퀴를 잡아 늘이며

갈그락갈그락 귀지를 파냅니다.

 

"아이고, 니가 이러니까 말을 안 듣지."

엄마는 들어 낸 귀지를

내 눈앞에 내 보입니다.

그러고는

뜯어 놓은 휴지 조각에 귀지를 털어 놓고

다시 귓속을 간질입니다.

 

고개를 돌려 누울 때에

나는 다시 엄마 무릎 내*를 맡습니다.

스르르 잠에 빠져듭니다.

 

*: 냄새

 

할아버지 요강. 도서출판 보리

 


늦은 밤 약주 한 잔 자신 불콰한 모습. 잠든 아이의 볼을 부비던 까끌까끌한 수염, 그 얼큰한 감촉을 갖지 못한 이는 억수로 삭막하다 아입니까.

귓속을 간질이는 까무룩 잠 속으로 아련히 빠져들던 어린 시절 추억, 하나쯤은 있어야 참된 어른이라 할 수 있지예.

나들어도 엄마 무릎 내. 들을수록 정겹고 아무리 써도 닳지 않는 참 포근한 단어. 햇빛 잘 드는 쪽으로 가려 앉아 잡아 늘이며 갈그락갈그락, 내려다보고 슬하에 잠드는 눈을 맞춘 시. 그래서 무릎하고 부르면 한결 순해지는 때가 있지요.

임길택 시인이 시를 엮고 적은 머리말에 제가 쓴 시들한테서도 어떤 향기가 있어, 시를 읽는 사람마다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욕심을 부려 봅니다.’ 하셨는데.

시보다 아름다운 삶을 세상에 쓰고 가신, 그리움의 향기를 오래도록 읽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그런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풂을 받은 많은 것을 되돌려 주는, 생은 이해의 선물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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