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이 찾아가는 조합원 인터뷰]이성호 조합원
상태바
[이사장이 찾아가는 조합원 인터뷰]이성호 조합원
  • 백종숙 이사장
  • 승인 2020.12.14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수마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농부 목사 이성호 조합원

외롭고 힘든 자들이 슬픈 것은 가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함께 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가장 큰 위로와 용기가 되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다. 예수도 우리를 향해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함께하겠다.’ 약속했다. 산수마을에는 산수교회도 있고 이성호 목사님도 살고 있다. 이 사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산수마을에 터전을 잡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군대 제대를 하고 학교에 복학했을 때 저의 미래를 그려보았어요. 어떤 목회자가 될 것인가?

침묵과 고뇌의 시간이었어요. 그때 정리된 나의 길은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산다. 공동체 목회를 지향한다. 신앙과 생활이 일치되는 목회에 힘쓴다. 선택할 수 있다면 어렵고 힘든 쪽을 택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가능한 곳은 농촌이더라고요.

그래서 현장 경험도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사실 저는 물렁살이거든요.) 목장의 목부가 되기로 맘먹고 경북 상주와 경기 안성의 목장 3곳에서 2년 동안 일하며 알통이 단단한 농부로 태어났죠. 환경이 열악하고 힘든 목부 생활을 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고 함께 일했던 목부들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었지요.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렇지만 막상 갈 곳이 어딘지 막연했죠.

아내와 몇 가지 기준을 세웠어요. ‘교회가 없는 곳이어야 한다. 가능하면 낙후된 곳이어야 한다. 지역 고도가 해발 400m 이상이어야 한다. 주변 경치가 수려해야 한다. 땅값이 아주 싼 곳이어야 한다.’ 이런 기준을 놓고 지도를 펴서 전북 장수를 찍고 이사를 했지만 1년 반이란 세월만 보냈어요. (웃음)

그러던 중 덕유산을 보게 되었고 어느 날 홀연히 산수마을이 나타났어요. 산수마을은 덕유산 거창 쪽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해발 600m 높이에 있지요. 계곡의 경치가 매우 뛰어났으며 물론 교회는 없었어요. 하루에 버스가 두 번 운행되는 오지였지요.

무턱대고 이장을 찾아갔어요.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문전박대 당했지만, 8개월 만에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빈집을 사게 되었어요. 집주인을 만나기로 한 날, 이장 댁에 가니 방안에 마을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앉아서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을 분들에 의한 면접시험이 시작되었고요. 2시간여 동안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지더라고요. 마침내 제일 어른 되는 분이 합격을 선언하여 산수마을 주민이 되었어요. 올해로 산수마을에서 산 지 27년이나 됐었네요. 어느 곳보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어요. 산수마을은 제 고향이라 말할 수 있지요.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는 거창으로 온 것이 아니고 산수마을로 왔다.” 실제로 산수마을에 들어올 때 거창에서 산수마을로 온 것이 아니고 장수에서 육십령을 넘어 서상에서 황점, 월성을 지나 산수마을로 왔고 집수리를 할 때도 이 코스로만 다녀서 한동안 거창읍엔 나가지를 않았어요.

 

산수마을 사람들과 살면서 겪은 희로애락을 듣고 싶어요.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 밥은 챙겨 먹는지 관심이 많았어요. 사생활은 다 노출될 수밖에 없었죠. 부담스럽기보다는 외지인인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관심이라 받아들였어요.

첫해 빌린 땅 300평에 가뭄 덕분에 대박 난 일, 덕분에 논 2마지기도 얻어 농사지은 일, 농약을 잘못 사용해서 벼농사 망치고 정농회를 알게 되고 유기농 농사를 짓게 된 일 등이 어제 일처럼 생각납니다.

어르신들이 교회에서 배운 한글로 농협에서 돈도 입금하고 찾고, 노래방 자막도 읽고 하는 즐거웠던 일도 있었지요. 외환위기 때 기름값이 비싸서 난방비 부담으로 인해 중단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뜬금없이 산수마을에 규석광산 허가가 떨어졌어요. 굴착기가 들어오고 진입로가 뚫렸어요. 거창읍에 내려가 환경단체 푸른산내들에 도움을 요청하고, ‘규석광산반대북상면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위원장을 맡았죠. 지역신문들이 일제히 자연이 온전히 보존된 산수마을에 규석 광산은 안 된다고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인허가 과정의 문제점들을 취재해 보도하고,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광산개발인가를 내준 도지사라고 보고 마을 사람 전원과 반대대책위 임원들과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도청으로 쳐들어갔어요. 규석광산은 백지화되었고요. 산수마을 주민이 승리했어요. 덕분에 거창의 시민단체와 함께 하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산수마을과 어른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늘 감사한 마음뿐임을 고백합니다.

 

농부 목사님으로 남다른 삶을 살아오셨어요. 할 이야기가 많으실 것 같아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이분들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죠. 마을 어른분들의 세상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오랜 연륜을 통해 쌓아 온 어른들의 지혜를 배울 때마다 저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목사가 목회나 제대로 하고 기도나 열심히 하지 뭐 하러 농사를 짓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지금도 바람이 있다면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는 겁니다. 얼치기 농사꾼이 아닌 진짜배기 농사꾼 말입니다.(웃음)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다 망쳐버린, 하나님이 만드신 이 땅을 다시 회복시키는 일은 농사꾼만이 할 수 있어요. 생명을 심고 생명을 가꾸는 일은 농사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농사야말로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생명을 지키는 성직이죠. 목회자가 영혼을 살리는 성직자라면 농사꾼은 육체의 생명을 살리는 성직자입니다.

하나님은 질서 있게 세상이 돌아가도록 만드셨지요. 하나님의 질서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 농사입니다. 심어야 할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고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며 겨울이 오지요. 봄이 오면 주저하지 않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반드시 여름이 올 것이고 가을이 오면 결실이 맺힐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음이 좋은 이는 농사꾼입니다.(웃음)

농사는 노동이죠. 땀 흘려 노동을 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하게 됩니다. 일에 몰두하다 보면 생각이 하늘까지 통해 있음을 깨닫게 될 때가 있어요. 노동이야말로 또 하나의 기도지요. 그래서 존경하는 성 프란체스코와 같은 성인들이 노동했나 봅니다.

 

한들신문에 바라는 바를 들려주세요.

한들신문은 거창지역의 언론이 제대로 구실을 못 하고 있다는 데에 공감한 지역 시민들이 만든 지역 주간 신문사이지요. 2014년 거창지역이 교도소(구치소) 설립에 대한 찬반 의견으로 분열되었지만, 지역 의제를 설정하고 공론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언론사는 없었어요. 이에 대한 실망이 새로운 지역 언론 설립 운동으로 이어졌고요. 설립 운동 과정에서 기존의 방식인 주식회사 형태가 아닌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설립된 것이 한들신문입니다.

부족한 취재 인력 때문에 어려움이 있지만, 집중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선택하여 지역에서 의제를 제대로 설정하고 민주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언론협동조합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신문 제작에 조합원이 참여한다는 것이죠. 한들신문도 조합원이 시민 기자, 무급 기자, 기획 기사팀 참여, 사진 촬영 참여 등으로 신문 제작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냈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 부족한 취재 인력 문제 등을 해결한다면 지면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지역민의 소통 공간으로서의 한들신문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기존 지역 주간신문이 지역민의 이해를 대변하지도 못하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요. 한들신문은 구독료를 내고 신문을 보는 조합원과 구독자가 있는 만큼 좌고우면 하지 말고 정론 직필의 길을 가야 해요.

언론 시장이 줄어들고 뉴스 소비 지형이 디지털 네트워크화되는 시대에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지역의 이야기가 많아요. 지역 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 그리고 지역민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의제도 만들어 내고요. 지역민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는 일도 지역 언론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라고 봐요. 한들신문이 지역성을 잘 살리는 신문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땅을 짚고 하늘을 이고 사는 영과 육으로 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어쩌면 딱 맞는 해답이 없어서 다행인지 모른다. 어느 날 문득 산수마을로 들어온 목사님은 스스로와 이웃과 세상 사람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시는구나!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며 노동이 기도입니다. 농사는 성직입니다. 농심이 믿음입니다.’란 기도가 머리를 맴돌았다. 농사를 최고로 여기는 목사님은 이미 최고의 농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