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73)「들꽃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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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73)「들꽃아이」
  • 한들신문
  • 승인 2020.12.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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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박은주

 

꽃도 사람도 인연이라네

그림을 잘 그렸으면한 적이 있다. 온통 머릿속에 옛 추억이 떠오르면 싹싹 밑그림 그리고 색을 얹히면 더 선명해지는 것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어린 시절의 골목길이 그랬다. 친구들과 재잘대며 오가던 학교와 전투적으로 놀던 장터 마당의 아이들, 오밀조밀 엮여서 살던 동네가 또한 그랬다.

<들꽃아이> 이 책을 덮으면 그 생각이 절로 난다. 아마도 그림을 그린 김동성의 영향력이 자못 크다. 더군다나 글을 쓰신 분이 우리 지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임길택이 아니던가?

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가 올해로 20살이 되었다. 꼭 스무 해 전, 임길택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고 나누다 소박한 그의 삶이 좋아서, 거창과 인연이 있는 분이라서 추모 행사를 기획하였다. 한두 계절이 지난 뒤부터 돌아가신 날(음력 1111)에 맞추어 임길택 문학의 날을 해마다 이어가고 있다.

어느 해, 나는 임길택 선생님 책을 발제한다고 먼저 이야기를 해 놓고는 선생님 삶이 궁금하여 채진숙 사모님을 만났다. 그 후로 행사 때마다 선생님과 관련된 단체(거창문학회, 어린이문학협회, 한국글쓰기연구회, 겨레아동문학연구회)와 가북 덕동에 사셨던 해광 스님을 만나면서 책 속에서 만난 선생님이 성큼 내 가까이 계시기 시작했다.

 

임길택과 김동성이 함께 공들여 만든 이 책은 <산골 마을 아이들>에 들어있는 들꽃 아이짧은 글을 그림책으로 펴낸 것이다. 군대도 가기 전에 첫 발령으로 6학년을 맡게 된 김 선생님은 3월의 바쁜 학기를 보내던 어느 날, 보선이라는 친구로부터 교실이 환할 정도로 진달래가 담긴 꽃을 보게 된다. 아이들이 보선이가 꺾어 온 거라 알려준다. 선생님은 지각이 잦아 생활기록부에서 일찌감치 보선이를 눈여겨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공부는 뒤떨어지나 정직하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함’. 그때는 중학교를 시험을 치러야 들어갈 수 있기에 어떤 선생님은 가난한 집 아이들을 공부 못한다고 나무라던 일이 많았다. 그러나 김 선생님은 공부로 평가되는 것이 잘못임을 알고 깨우쳐 주려고

저는 여러분이 공부를 잘하여 를 올리는 것도 좋지만 어려운 친구를 도울 줄 알고 맡은 일을 끝까지 해냅시다와 같은 행동도 함께 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마음을 전한다.

5월이 되자 보선이가 가져오는 꽃의 가짓수가 많아졌다. 선생님은 식물도감을 사서 모르는 꽃을 익힌다. 보선이가 새로운 꽃을 꺾어 온 날이면 아이들과 선생님은 빙 둘러 모여 꽃 찾기에 열심이다. 어느 날은 개불알꽃이라는 특이한 이름에 한바탕 웃는다. 한 여름날, 장심부름 하느라 더러 늦는 보선이가 선생님 약속을 어기고 물건을 사 오자 호되게 야단친다. 그 날, 친구로부터 보선이가 손전등을 가지고 학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듣던 중 처음이라 깜짝 놀란다. 방학 전 보선이네 집을 한 번 가봐야지 한다. 어느 토요일, 자전거를 타고 따릿골로 향한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길을 걸으며 수많은 들꽃들이 보인다. 이런 아름다운 길을 걷는 아이라면 마음도 더없이 아름답게 자라겠지……. 꽃의 숨결을 느끼며 점점 깊어가는 숲 속은 해가 기울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길도 점점 험해지고 무서운 생각도 떠오른다. 하늘에 별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보선이가 이토록 먼 길을 다니고 있었구나그제야 보선이가 왜 손전등을 가지고 다녔는지 이해한다. 달빛에 비치는 자연을 통해 마음가짐도 다시 새긴다. 보선이 집에 도착하니 열 시가 넘었다. 다섯 집뿐인 마을 사람들이 30년 전 학교가 생긴 이래 직접 찾아준 선생님은 김 선생님이 처음이란다. 감자떡, 메밀묵, 옥수수 술 귀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잠자리에 든 선생님도 까마득히 먼 나라에 와 있는 생각에 쉬이 잠이 들지 못한다. 가을에도 보선이의 꽃바치기는 계속된다. 겨울이라도 눈이 쌓이지 않는 한 지각을 하는 수는 있어도 결석을 하지 않는 보선이가 대견하다. 졸업하는 날, 며칠간 눈이 내려 결석을 한 보선이를 볼 수 없는 마음에 선생님은 안타깝다. 3월이 되면 군대에 가야 한다. 보선이에게 주려고 산 책을 이웃 반 선생님께 맡기고 돌아온 교실에는 늦가을 보선이가 꺾어왔던 노박덩굴이 아직도 노랗게 벽에 걸려있다. 텅 빈 교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는 선생님 뒷모습이 애잔하다. 실제로 선생님이 사시면서 일어난 일들을 쓰셨기에 그림 속의 김 선생님은 어느새 임길택 선생님으로 서 계셨다. 나도 한동안 멍하니 선생님의 뒷모습을 본다.

 

아이들 꽃.

지상에 피어나는 꽃.

사랑을 품고 자라는 아이들.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스미는 감정이 있다. 그날의 기분과 날씨, 냄새와 온도, 입고 있던 옷의 모양과 색깔까지 떠오른다. 빛의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사계절의 배경이 오래된 사진처럼 포근하다. 보선이가 건네준 꽃의 선물을 나도 흠뻑 받은 마음이다. 먼 산길을 걸어 나와야 하는 힘든 하루를 아름다운 공간으로 바꾸는 보선이의 들꽃 같은 미소가 좋다. 보선이가 걸었던 길, 김 선생님이 걸었던 그 길을 우리는 자꾸 잃어간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향기와 아름다움이 오래 남는 들꽃 같은 삶. 오늘은 과연 어디에서 또 다른 보선이를 마주치게 될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러하다. 지난 20년간 임길택 선생님과 가졌던 여러 일들을 되새겨 본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소박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글로써 담아내셨다. 산문집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에서는 올곧은 교사의 모습으로 바른 사람살이를 하라고 우리들을 일깨워 주셨다. 그가 사랑한, 그래서 머물러 살던 강원도 산골, 경상도 산골에서 임길택 선생님은 조금씩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비로소, 아이들 편에 서는 선생님이 되어 계셨다.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는 김 선생님의 모습에 임길택 선생님 생각이 아련하다. 임길택 선생님 돌아가신 그 해에도 많은 눈이 내렸다 한다. 올 겨울에도 예년과 같이 선생님 글을 읽으며 자꾸만 교만한 마음, 더 갖고 싶은 마음, 뒤틀린 마음, 복잡한 속내를 하얗게 하얗게 녹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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