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 이야기 서른일곱 번째]시설에 살아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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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이야기 서른일곱 번째]시설에 살아야 한다면?
  • 한들신문
  • 승인 2020.12.2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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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어느 날, 어떤 이유로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면, 누구는 살겠다 하고 누구는 못 살겠다 하겠죠. 시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설의 삶을 기대할 수도 있고 절망할 수도 있겠죠. 기대와 절망, 어느 쪽입니까?

절망하는 사람에게 시설은 어떤 곳일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위치가 좋지 않아, 구조와 평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곳은 누군가에게 잊히는 존재가 되는 어떤 낯선 곳이고, 통제되는 어떤 두려운 곳이야! 그곳의 은 뭔가 달라.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이 질문은 만만치 않습니다. 당혹스럽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시설에서 일한다면 답해야 합니다. 시설의 삶을 기대하는 나의 이유가 시설에 사는 그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시설의 삶을 절망하는 나의 이유가 시설에 사는 그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그렇고 그렇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내 복지관에서 일할 때, 아파트 긴 복도를 지나며 무심결에 한 집 한 집 흘깃하다 멈춰 섰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받은 충격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여기는 어디며 나는 무엇을 하는가?

복지관 퇴사 후 어느 날, 아파트 복도에서 받았던 그 충격을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왜 그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느냐, 문헌을 살피고 글을 쓰고 고민을 나누었어야지 하며 꾸중하셨습니다. 그리고 해배(解配)’를 말씀하셨습니다.

 

○○복지원, ○○, 영구○○○○○… 마치 뭐 분류 수거하듯 약자를 분류 수용하고 관리 통제하는, 마치 뭐 쓸어 담듯 약자를 집단으로 이주시키는, 복지판 인종 청소라 할지 모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실상 사회와 격리된 채 복지기계로 생존 연명하는 약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약자 복지 별천지, 약자들의 집단 거주지, 어떤 곳은 유배지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곳의 사회사업가라면 해배를 도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리적 해산은 몰라도 사회적 해배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릇 사회사업가라면 약자를 분류 분리하는 일에 삼가 나서지 말고 방조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불가촉천민, 흉악범, 전염병자 다루듯 격리를 획책하는 체제의 하수인 노릇 하며 그 분리의 고착화에 가세해서는 안 됩니다.”

복지야성』 「복지기계, 2016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가 결국에 이루려는 일은 무엇인가? 해배입니다. 자기 일상과 삶에서 유배된 자를 다시 자기 일상과 삶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시설에서 사회사업가가 할 일입니다. 한쪽 다리 싸매어 창공으로, 덫을 풀어 산속으로, 한때 목마름을 채웠으면 다시 광야로, 상처 입었을지언정 야생으로, 본디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시설에서 시설 사회사업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일상과 삶으로부터 유배되는 배경에는 가난, 질병, 장애 같은 약자의 처지와 상황이 있습니다. 또 다른 상황이 있는데, 동료들을 생각하면 이런 주장이 미안하지만, 일상과 삶을 통제하는 복지시설과 사회복지사로부터의 해배도 필요합니다.

내가 시설에 산다면 어머니 품이면 된다, 친구 곁이면 된다, 한 사람이면 족하다 하겠습니다. 아웅다웅해도 좋다, 옥신각신해도 좋다, 치열해도 좋다, 사람들 틈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지곤지 찍고 만날 사람 있고, 한 벌 차려입고 갈 곳 있으면 좋겠습니다. 맨밥도 좋고 진밥도 좋으니 내가 했다 하면 좋겠습니다. 돌돌 말아 넣어도 내 옷장이고 드문드문 쓸어도 내 방이면 좋겠습니다. 누구는 동쪽 창이 좋다지만 누워서 노을을 보는 서쪽에 창을 내겠습니다. 자기 일상과 삶으로.

- 어느 시설 사회사업가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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