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홍복과 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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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홍복과 청복
  • 한들신문
  • 승인 2020.12.2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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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인 고재천
귀농인 고재천

남회근 선생의 금강경 강의란 책에 보면 홍복과 청복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홍복은 세간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복이며 청복은 청정한 복인데, 둘은 동시에 누릴 수가 없으며 청복은 지혜가 있어야 하고 만년에 이르러 누리는 복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청복을 고통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영농 기술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유가 어떠하든 올해 농사는 망쳤다. 그렇다고 길고 긴 포도 농사의 농한기를 분석과 자책, 반성만 하고 보낼 수는 없어서 지나간 과거는 잊고 다음 시즌을 위해 나름 즐겁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육아는 기본이고, 틈틈이 음식도 만들어 가족들에게 선도 보이고, 못 읽었던 책도 보고 매일매일 운동도 하고, 또 사우나도 가서 피로도 풀고, 피폐해졌던 심신을 달래며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우나 탕에 앉아 문득 특별한 걱정 없이 오롯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생활하는 현재의 모습에 이런 게 복이구나.... 청복이 이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다닐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집만 나서면 무조건 일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사생활은 직장에 맞춰 움직여야 했었다. 한마디로 사화만사성(社和萬事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돈만 잘 못 벌지 그때 생활에 비하면 거의 황제도 부럽지 않은 생활처럼 느껴졌다, 그냥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런 복이 제발 오래가길 빌고 바랐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운동할 때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걸음도 걷기가 힘들어졌다. 병원에 갔더니 무리한 운동 때문에 아킬레스건이 부었다고 한다. “아쉽지만 한 2~3개월은 되도록 걷지 마세요.”라고 의사가 이야기했다. 걷지도 말라고 하니 매일 하던 운동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조금 몸이 가벼워지고 있는데... 정말 얼마 즐기지도 못했는데... 혼자서 마음이 너무 들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할 것 같은 농한기 생활은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하지만 느끼는 바가 많았다. 앞으로 농사일을 늘이더라도 홍복을 추구하며 농사에만 매달리는 농화만사성(農和萬事成)이 아닌 청복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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