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호 아저씨의 자취 일 년을 돌아봤습니다. 오십 평생 시설에서 살았던 아저씨는 일 년 전부터 거창읍에 사글셋방을 얻어 자취합니다. 옷장 내가고 냉장고 사고 살림 장만하던 때가 몇 달 전 같은데, 벌써 일 년입니다. 반백 년 아저씨의 발목을 붙잡았던 ‘만에 하나 있을 사고’는 없었습니다. 반백 년 숨기고 가렸던 아저씨의 참모습이 무수히 드러났습니다. 말과 행동, 마음과 생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자취 3주 만에 옷장, 냉장고, 서랍장에 채웠던 자물쇠가 하나둘 없어지더니 다 사라졌습니다. 시설 안에서 단체 생활하며 다른 입주자에게 이런저런 피해를 볼 때는 곳곳에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다른 사람도 자물쇠를 채웠지만, 아저씨는 유독 자물쇠에 집착하고 물건을 깊숙이 숨겼습니다. 이삿짐 꾸릴 때, 구석구석에서 발견된 물건들에 깜짝 놀랐습니다. 상한 음식과 잃어버렸던 물건들까지.
그랬던 아저씨가 자취 몇 달 만에 모든 문을 개방하고 자물쇠를 치웠습니다. 한동안은 혼자 살면서도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외출복 갈아입으려면 옷장 자물쇠 풀었다가 다시 잠그고, 음식 꺼내려면 냉장고 자물쇠 풀었다가 다시 잠그고, 간단한 물건도 수납장 자물쇠를 풀어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 혼자 사는 집이고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반백 년 채웠던 자물쇠가 쉬 풀리겠습니까?
어느 날, 깜빡하고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외출했습니다. 그런데 옷장의 옷이 그대로, 냉장고의 음식이 그대로, 수납장의 물건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자 자물쇠를 한 개 두 개 풀어헤치더니 스스로 모두 없앴습니다. 아저씨의 마음, 아저씨의 생각, 아저씨의 삶이 풀어헤쳐지는 것 같습니다.
시설 안에 사는 어떤 입주자가 물건을 자꾸 숨긴다면 그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아저씨의 나쁜 습관, 지적 약자의 특성, 시설 입주자의 특성…, 그래서 사례 회의하고 지도·학습·훈련·치료한다? 아저씨는 스스로 자물쇠를 걷어치웠습니다. 필요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