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이야기 9]다섯 가지 감각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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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 이야기 9]다섯 가지 감각의 영토
  • 한들신문
  • 승인 2021.01.2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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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초 돌봄전담사 이수연

모처럼 바람 끝이 둥근 오후다. 햇살은 엷은 오렌지 빛 등을 남쪽 창에 내다 건다. 나는 비눗방울만 한 공간 하나를 슬쩍 띄워 올린다.

얘들아, 겨울 나들이 하러 운동장에 가자.”

아이들은 추위도 잊고 급하게 나갈 채비를 한다. 민성이는 외투가 뒤집어진 줄도 모르고 팔을 끼워 넣는다. 준수는 저만치 뛰어가면서 마스크를 고쳐 쓴다. 뒤따라가는 나는, 하지만 다 계획이 있다. ‘다섯 가지 감각 느끼기놀이를 하려는 것이다. 이 놀이는 사물의 모양뿐 아니라 그 사물의 냄새, 촉감, 소리, 맛 등 우리가 가진 감각으로 세계를 자세히 관찰해 보는 놀이다.

얘들아, 무슨 소리가 들리니? 귀 기울여 봐.”

바람소리요. 푸우웅 푸우웅

나뭇잎 구르는 소리 들려요. 틱틱틱!”

건우가 느티나무를 안는다.

? 여기 이끼가 있어요. 이 이끼 죽었나?”

이끼는 바스러질 듯 말라 있었지만 뿌리를 단단히 나무거죽에 박고 있다. 척척박사 민성이가 대꾸한다.

잠자는 거지. 겨울은 잠자는 시간이야.”

공기방울만 한 공간이 애드벌룬만 한 공간으로 확대되었다.

얘들아, 간식 먹으러 들어가자.”

교실은 구워지고 있는 고구마 냄새로 가득 차 있다. 들뜬 감각의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 고구마에서 탄 냄새가 나요. 단 냄새도 나고요.”

이거 호박고구마죠? 엄청 노릇노릇해요.”

간식시간에는 다섯 가지 감각이 폭죽 터지듯 한꺼번에 터진다. 군고구마 냄새가 따뜻한 솜이불처럼 교실을 감싼다. 아이들의 눈빛이 온화해진다. 말랑한 고구마를 반으로 자를 때 마치 노란 해바라기 꽃 피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이 침을 삼킨다. 따스한 온기를 손과 혀의 감촉으로 느낀다. 아이들이 사르르 웃는다. 어금니 사이로 으깨어지는 맛과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맛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챌 때 아이들은 눈을 감는다. 애드벌룬만 한 공간은 구름만 한 공간으로 커졌다. 아이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생생한 언어를 건져 올린다.

 

겨울에 들리는 바람 소리는 쓩쓩거린다. 그네는 삐걱삐걱 소리다. 우리 흰둥이는 아침에 벌벌 떨고 있었는데 밤에는 이불 속까지 벌벌 떠는 소리가 들린다.

장민성 겨울의 소리부분

바람이 불 때 날아가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엄마하고 나하고 둘이서만 이불 속에서 놀고 싶다. 이불은 따뜻하고 부드럽다.

박수민 엄마의 이불부분

이불 속에서 형하고 발가락 꼼지락 거리기 놀이하면 이상하다. 형 발가락에 눈이 달린 것 같다. 형 발가락이 내 발가락을 잘도 찾아낸다.

강준수 이상한 겨울부분

고구마는 탄 냄새가 난다. 단 냄새도 난다. 밖에 나가면 너무 추워서 아무 냄새도 안 난다. 방에 자러 들어가면 내 이불에서 따뜻한 냄새가 방안 가득 난다.

이윤희 겨울 냄새부분

 

다섯 가지 감각 느끼기로 건져 올린 문장들은 그저 아이들의 공책에 누운 채 잠들고 마는가? 아니다. 문장들은 다시 몸을 세우게 된다. 바로 낭독하기를 통해서다. 나는 여러 가지 낭독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자신의 글을 소리 내어 읽기’, ‘다 같이 입 맞춰 읽기’, ‘단락을 나누어서 연속으로 읽기’, ‘친구의 글 소리 내어 읽기.

공기방울만 한 작은 공간은 다섯 가지 감각 느끼기놀이를 통해 구름만 한 공간이 되었다가 낭독하기를 통해 하늘만큼 커졌다. 이 영토가 사물에 대한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기대를 만나게 되면 상상의 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상상의 영토에 경계 따윈 애당초 없지 않은가.

지구가 설핏 몸을 뒤척인다. 햇살이 서둘러 짙은 청동 등을 서쪽 창에 내다 걸고 있다.(20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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