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 이야기 서른아홉 번째]알코올중독자에서 입주자 대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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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이야기 서른아홉 번째]알코올중독자에서 입주자 대표로
  • 한들신문
  • 승인 2021.01.2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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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아저씨는 한쪽 팔이 없습니다. 공장 프레스 사고로 잃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흔히 말하는 알코올 중독. 월평빌라에 입주한 것도 그런 아저씨를 보다 못한 가족들의 뜻이 컸습니다.

입주 후에도 이삼 년은 술 마시고 소란 피우고, 술 마시느라 돈을 한 번에 다 쓰고 여기저기 빌려서 갚지 못했습니다. 아저씨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다른 사람들은 등 돌리고 직원은 속상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박 씨 아저씨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저씨의 그런 이미지가 조금씩 변했습니다. 미술학원 다니며 그림을 그렸는데 재료비가 꽤 들었고 아저씨가 부담했습니다. 돈을 한 번에 다 쓰면 안 되는 경우가 생긴 거죠. 그때부터 조금씩 변한 것 같습니다.

그림 그리러 공원에 가고 저수지에 갔습니다. 그러다가 풍경을 사진에 담고, 사진을 보며 풍경을 그리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아저씨는 카메라를 사겠다고 결심합니다. 카메라를 사겠다는, 돈을 모아서 카메라를 사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아저씨는 술을 줄였고, 그때부터 아주 달라진 것 같습니다.

입주자 한두 명씩 아저씨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부터 6년 연속 입주자 대표로 뽑혔습니다. 월평빌라 입주자 대표는 선거를 통해 입주자들이 직접 선출합니다. 선거 기간에는 후보 간 갈등이 있을 정도로 치열합니다. 쟁쟁한 후보들을 뒤로하고 6년 동안 입주자 대표에 당선되었습니다.

2015년부터 시설 바깥에 방을 구해 자취합니다. 학습지 사무실을 청소하는데, 그 빌딩 주인이 아저씨를 좋게 봐서 건물 청소까지 맡겼습니다. 3,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일합니다. 월급이 꽤 됩니다. 월평빌라에서 나오는 폐지 모아서 파는데, 얼마쯤 용돈이 됩니다.

입주 초기부터 아저씨의 알코올 중독이 문제였지만 그것을 문제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아저씨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소란을 피우고, 돈 때문에 어려울 때마다 어떻게 도울지 궁리했습니다. 아저씨가 잘하는 것으로 도우려 했고, 아저씨도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마침 그림과 사진에 몰두했고, 입주자 대표라는 좋은 구실이 생겼습니다. 직원이 그렇게 유도했는지 하늘이 돕는지 지금까지 술 때문에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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