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아름다운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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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아름다운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 한들신문
  • 승인 2021.01.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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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염민기, 시인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민음사


한번은 눈으로 읽고, 한번은 소리 내어 읽어본다. 
그리고 마음으로 다시 읽어 본다.
읽을수록 따뜻해지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그런데, 얼마나 맑고 깨끗해져야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무는 것들, 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완성하는 이별’ ‘숭고한 이별’을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고 했는데
언제쯤이면 시인의 마음을 닮을 수 있을까?

세상이 어찌 시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삶의 이별과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변주시킬 수 있는 
천상의 악기 덕분이다
그 악기의 이름이 바로 시와 시인이다.

오늘 밤에는 아름다운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자, 그대 받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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