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76)「여행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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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76)「여행 가는 날」
  • 한들신문
  • 승인 2021.01.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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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홍순희
서영은 글/그림 / 위즈덤 하우스 / 2020.11
서영은 글/그림 / 위즈덤 하우스 / 2020.11

삶의 마무리,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여행...

마을 책방에 들렀습니다.

새로 나온 그림책을 눈여겨 보다가 눈에 쏙 들어오는 책 한 권을 발견했어요. 책방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다음번 그림책 소개는 바로 이 책이라고 마음먹습니다.

1월 첫 그림책 소개로 여행 그림책을 소개했었는데요. 두 번째로 소개할 그림책 이야기도 삶의 또 다른 여행이 주는 의미의 그림책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한 세상 살다가 언젠가는 떠나야 할 여행 바로 죽음 앞에 선 할아버지의 하루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조용하던 할아버지의 집에 손님이 찾아옵니다.

회색빛 벽, 노란 문, 빈 소파, 벽에 걸린 시계마저 고요하고 적막합니다. 누가 봐도 그리 반가운 손님이 아니란 건 짐작이 되지요.

밤이 꽤 깊은 시각 누군가 할아버지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마음이 콩닥콩닥 거립니다.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검은 옷을 입고 온다는 저승사자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이제야 왔구나. 기다리고 있었단다,”

 

할아버지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뽀얀 안개 같은 이 손님은 할아버지의 여행길 안내자라고 합니다.

손님이 도착하자 할아버지는 바빠집니다. 먼 길 가야 할 준비에 이것저것 챙길게 많습니다.

장롱 밑에 숨겨둔 동전을 꺼내고 삶은 달걀과 입을 옷 정도의 소박한 것들이죠. 뽀얀 안개 같은 손님은 할아버지 옆에서 계속 이야기해줍니다.

 

돈이 없어도 되는 곳이에요.”

 

별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구요.”

 

먼 여행이 처음인 할아버지는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뽀얀 안개 같은 손님이 귀띔해 줍니다. 성격이 급한 어떤 사람은 태풍을 타고 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갓 구운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나는 식빵을 타고 갔다고 하고 휠체어만 타고 다니던 사람은 글쎄, 두 다리로 걸어갔다고 하고...

죽음 앞에서 할아버지는 막연하고 막막합니다.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무엇을 두고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할아버지께 뽀얀 안개 같은 안내자가 말합니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할아버지의 아내가 마중을 나올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네요. 할아버지는 금 새 기분이 좋아져 수염을 깎고 목욕을 하고 얼굴에 팩을 붙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던 양복을 꺼내 입었어요. 보관한 지 오래되어 할아버지처럼 주름이 많이 생겼고 셔츠도 몸에 꽉 끼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답니다. 추억의 사진첩에 사진도 몇 장 챙겼어요.

할아버지는 이제 떠날 채비가 끝난 모양입니다. 할아버지와 손님은 밖으로 나갔어요.

 

, 이제 길을 떠나 볼까?”

 

그런데 여행을 떠나는 할아버지는 슬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지요.

 

슬프기는, 미안하지. 남겨진 사람들이 슬퍼할까봐 그게 미안해”.

 

그리고 쪽지를 남겨둡니다.

 

걱정 말거라. 나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야.”

 

그렇게 할아버지는 먼 여행을 떠나셨대요.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픔이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신기하게도 사랑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죽음을 이야기 하는 그림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책 표지의 그림은 이제 곧 다가올 봄을 알리는 듯합니다.

벚꽃 잎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 할아버지와 한 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첫 페이지는 어두운 회색빛으로 슬픔이 감돌았지만, 오히려 투명한 손님이 찾아오면서 점차 밝아집니다.

어느 누구나 무섭고 두려운 것으로 생각되는 죽음에 대해 이 그림책에서는 자연의 섭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지도록 도와줍니다.

 

책의 맨 마지막 장면은 파란색 의자 위에 앉은 어린 꼬마가 분홍빛으로 흩날리는 벚꽃 잎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배낭을 메고 먼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친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행이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니... 그리 외롭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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