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상태바
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
  • 한들신문
  • 승인 2021.02.08 1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

이 기고는 고 김운섭 전 거창사건유족회장이 거창사건 당시 겪은 경험을 책으로 만든 ‘거창양민학살 억울한 죽음 뒤처리’입니다. 한들신문은 당시 김 전 회장이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기고로 옮기면서, 생동감을 전하기 위해 책에 사용된 표현까지 그대로 인용함을 알려드립니다.

▶ 차  례 ◀

거창양민학살 희생자 유족의 요구(2)
제48주기 11회 합동위령제◀
두 고문의 불만◀
합동위령사업 입찰사고◀
학술토론회, 합동위령제 및 추모행사를 겸한 기공식(1)◀

학술토론회, 합동위령제 및 추모행사를 겸한 기공식(2)

48주기11회 합동위령제

19999748주기 제11회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이 박산 묘역 뒤편 예비군훈련장 했던 데서 엄수되었다. 조성제 사회로 임호섭 회장 개제사 선언에 이어 초헌관에 정주환 군수, 아헌관에 이수정 군의회 의장, 종헌관에 이무진 교육장 순으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2부 추모행사는 거창군 이채순 행정과장의 사회로 국민의례에 이어 내가 경과보고를 했으며, 정주환 군수, 이강두, 강종희 의원, 정진오 지원단장, 장정자 경남보건복지국장, 거창경찰서장 김태호, 정종기 도의원, 권해옥 전의원을 소개하고 추모사를 했고, 이어서 행정자치부장관의 추모사를 정진오 거창사건처리 지원단장이, 김혁규 경남지사의 추모사를 장정자 보건복지국장이 대독하고, 이강두, 강종희 의원 그리고 권해옥 전의원의 추모사가 있었다.

끝으로 임호섭 유족회장이 5·18 광주유족회 정수만 회장, 제주백조일손 유족회장을 소개하고 인사말을 했다. 그리고 한화갑 의원의 조전과 조화를 보내준 분들을 소개하고 행사는 끝나고 추모객들에게는 소고기국밥에 술, 음료로 중식을 제공했다.

 

두 고문의 불만

2000124일 유족회 정기총회는 임원개선이 있었다. 회장 선출은 추대가 되어야 하는데 문철주 씨와 박성출이 경합을 하여 문철주 씨가 회장이 되었다. 임호섭 회장은 연임이 될 줄 알았는지 노한 모습으로 회의 도중에 가버렸다. 부회장 박성출, 김운섭, 총무 이갑수, 재무 김길영, 감사 김용제, 문창근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다.

며칠 후 임원회를 개최하는데 박성출 부회장은 불참, 이갑수는 총무직을 극구 사양하여 내가 총무를 맞고 부회장 이갑수, 조성제로 교체하였다.

이사진은 서울, 부산 각 지역별로 추천하여 결정이 되었고 고문은 이사회에서 배제하자는 의견이 나와 문병현, 이철수, 임호섭 세 고문을 배제하였는데 화근이 되었다. 문병현 고문은 이의가 없는데 이철수와 임호섭은 자기들이 배제된 회의는 무효라는 것이다. 유족회 각종 회의에서 그 둘이 너무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나는 자문만 해달라고 했으나 듣지를 않아, 일부 이사들이 그 둘 참석을 반대하기 때문에 내 생각은 세월이 흐른 후에 복귀 계획을 세웠는데, 그 둘은 참지 않고 문철주 회장 체제를 와해시키려고 했다. 하다가 말겠지, 그러나 그 둘은 문회장을 무능으로 몰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괴롭혔다. 힘을 모아 단결하여도 갈 길이 바쁜데 내부 갈등으로 유족회 문회장 리더십에 적신호가 켜졌다.

 

합동위령사업 입찰사고

유족회 간부들이 입법부와 행정부를 찾아다니며 조르고 졸라 부지매입비를 행자부 1/4분기 예비비에서 어렵게 반영했고, 사업 시행 관청인 거창군은 사업 추진 일정에 맞추어 입찰 공고를 하여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거창군 초유의 기상천외한 사태가 발생했다.

입찰일을 당초 200095일로 정해놓고, 981340분으로 연기하여 7개 업체(서울 수퍼종합건설, 광주 남해건설, 대구효자건설, 순천 성웅건설, 대전 DS건설, 청주 보성건설, 광주 대신종합건설)가 등록을 하여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중 가장 유력한 보성건설 대표를 거창의 백산건설(정주환 군수 처조카)40여 분 동안 납치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거창의 주관지 들이 대서특필로 보도했다. 유력한 업체라는 것은 입찰도 보기 전에 이미 세인들은 알고 있었고 방해자가 군수의 처조카라는데 화가 치밀은 것이다.

유족들은 분노했고 총무가 회장 명의로 7개 항을 메일에 올려 군수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답변은 지원팀 담당자가 했고, 조성제 군의원은 군수를 너무 몰아붙이면 안 된다 하고, 문철주 회장도 조성제 말에 공감하는 태도에 실망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정도를 가겠다고 다짐하고, 잘못을 한 군수를 찾아가 따지려 했으나, 실무 책임을 담당한 자치행정과장이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기에 한발 물러섰다.

2000109일 위령탑이 창작이 아니라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국립중앙극장 입구에 세워진 3·1독립운동 기념탑과 같은 모조품이라는 제보를 받고, 군청 지원 팀장 이선우 계장, 전정규 담당, 문철주 회장, 조성제 군의원, 이갑수 부회장에게 사진을 보이며 이의를 제기하였더니, 이선우, 전정규, 조성제는 아니라고 일축해 버리고, 문철주와 이갑수는 반신반의하는데, 문제는 조성제가 군의원이 되더니 어용(御用)이 되어 버려 실망스럽다.

훗날 누군가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위령탑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때 누가 답할 것인가. 유족들의 노력으로 44년이 걸려 만들어지는 위령사업 일선에서 일하는 유족회 임원들이 똑바른 정신으로 임해야 된다고 다짐해본다.

 

학술토론회, 합동위령제 및 추모행사를 겸한 기공식(1)

특별법으로 위령사업을 한다 하여 명예회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희생자 719명 전원이 인정 되어야 하고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이 개정 되어야 하고 법을 개정하려면 학술 토론회나 공청회를 열어 사회 공감대를 형성(形成) 해야 한다는 것이 공론이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은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건이다. 그러나 내막으로는 자료가 너무 없다.

글쟁이들이 몇몇 증언을 토대로 써낸 몇 권의 책과 신문에 보도된 것이 고작이다. 늦었지만 공청회를 열어 사건을 정확히 정립을 해야겠는데 비용이 관건(關鍵)이었다.

위령사업은 입찰방해로 인해 정주환 군수와 관계가 서먹해졌는데 관계 개선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문철주 회장과 정주환 군수 면담을 하고, 학술토론회와 합동위령제 및 추모행사와 기공식을 하자고 제의를 했다.

정주환 군수가 긍정적으로 받아주어 학술발표회 비용이 문제라 했더니, 얼마면 되느냐고 물어 문회장이 7-8백만 원을 제시했다. 아차 사전 조율을 못했구나, 회장이 7-8백을 제시했으니 뒤집을 수가 없어서 난처했다. 그러나 회장이 제시한 비용으로는 어림없다. 사건을 잘 아는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를 섭외해야 하고 자료집 수집과 장소 안내장 팸플릿 등을 갖추자면 2천만 원은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에 군수도 공감을 하며 천오백에 계획을 세워보라 했다. 그러는 동안 합동 위령사업 업자도 선정이 되었다. 이 사회를 열어 학술발표회와 위령제 및 기공식을 하기로 하고 기타 일정은 회장단에 일임되었다.

20001018거창역사 교사 모임신용균 교사, ‘참여자치 연대모임한대수 씨와 거창종합복지회관에서 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창립총회를 개최했다. 문철주 회장은 상임대표로 추대되었고 나는 집행위원장이 되어 취지문을 낭독했고 회칙도 채택했다.

그리하여 1021일 거창전문대 강당에서 학술발표회를 하고 1022일 신원에서 합동위령제 및 추모식을 겸한 기공식을 하기로 뜻을 모아 평화인권예술제위원회이름으로 박산 묘역 앞에 현수막을 걸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임호섭이 시비를 걸어왔다. 추모를 해야 하는데 예술제가 뭐냐는 것이다. 현수막을 철거하라고 야단이다. 그리고 학술발표회도 안 맞다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