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벤구리온(1886~1973)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다. 그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1906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농장 노동자이자 사회주의자가 되었으나 평생의 꿈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초대 총리로 1950년대 중반 2년을 제외하고 1963년까지 13년 5개월 동안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훌륭하게 이끌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강소국(强小國)으로 자리 잡은 것도 그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다. 총리 은퇴 후에는 집단농장 ‘키부츠’가 있는 작은 마을 ‘스데 보커’에서 생활하며 자전거를 타고 시장을 다니는 소박한 생활로 여생을 보냈다. 또 그는 “사막은 시작할 기회”라며 녹화(綠化)하고 농지로 쓸 방법을 연구했다. 사막이 개발되는 오늘날 놀라운 일들은 모두 벤구리온에서 비롯되었다. 이스라엘 국민 대다수가 지금도 숭배하는 인물이다.
헤롤드 윌슨(1916~1995, 노동당)은 1960~70년대에 걸쳐 7년 9개월여 영국 수상(제48대, 50대)을 지냈다. 그는 임기 중 수상직을 물러설 때(1976년 4월 5일) 기자회견에서 “영국은 당신의 계속적인 봉사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기자 질문에 “나는 특정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을 거부합니다. 나는 그토록 영국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인물이 결코 아닙니다. 다른 인재들이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는 퇴임 후 수상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당장 이사할 집이 없어 후임 수상 측에 살 집을 구할 때까지 좀 기다려 달라는 양해를 구할 만큼 청렴한 생활을 했다.
샤를 드 골(Charles de Daulle,
1890~1970) 1959년 프랑스 제18대 대통령이었고 1965년 대선에서 재선 하였으나 1969년 ‘지방제도 및 상원 개혁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패해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대통령 재임 10년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잔여 임기가 3년이나 더 남은 상태였다. “나 그만둡니다(Je quitter).” 두 개의 단어로 모든 것을 끝내고 대통령직을 던졌다. 사임 후 고향인 꼴롱베에 은거할 때 망가진 집수리비를 국무회의에서 특별 의결하여 보조키로 했는데 그는 끝내 사절했다. 파리 공항의 이름이 ‘드골 공항’, 파리 개선문 광장이 ‘샤를 드 골 광장’이다. 파리를 비롯한 크고 작은 도시의 주요 거리에 ‘드 골 거리’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권좌에서 물러나 한 평범한 시민으로 고향에 돌아간 드 골의 구김살 없고 의연한 자세. 프랑스 국민들이 대통령 이후의 인간 드 골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여 흠모하는 것을 발견하고 감동할 뿐이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1924~ 생존, 사회당) 1994년 6월 30일부터 1996년 1월 11일까지 제81대 일본 수상을 지낸 그가 정계 은퇴 후 한국 중앙일간지 동경 주재 특파원과 대담을 한 일이 있었다. 그는 1995년 8월 15일. 전후 50주년의 종전 기념일에서 일본이 태평양 전쟁과 전쟁 이전에 행한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를 발표한 사람이다. 노 정치가에게서 기자가 놀란 사실이 두 가지. 하나는 전직 수상이자 80대 노인이 인터뷰 현장에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나이에 비해 무척 건강해 보였다는 것이다. 건강의 비결이 뭐냐고 묻자 검소하게 생활하면 자연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 전직 수상이 목조 2층의 초라한 집에서 생활하고 재계(財界) 총수의 집이 25평 정도라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의 길지 않은 헌정사에서 최고 정치 지도자는 어떤 모습을 보였나?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와 동시에 동상이 토막 난 채 대로변을 끌려다녀야만 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시해되어 관저를 떠나야 했고 그 딸은 국정 농단,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반란 수괴죄 및 살인, 뇌물 수수 등으로 각각 무기,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2년여 수감생활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9가지 주요 의혹에 징역 17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 8천만 원의 확정판결이 났다. 부끄럽다 못해 참혹하다. 정치 지도자의 ‘등장’과 ‘퇴장’의 대도(大道)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는 국민통합의 상징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되어야만 한다. 물러난 지도자들에게 그 노후의 평안을 기원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늘 가지는 국민은 참 행복할 것이다. 지도자의 권위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