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 이야기 마흔 번째]진작 말 좀 하지 그래! (2편)
상태바
[월평빌라 이야기 마흔 번째]진작 말 좀 하지 그래! (2편)
  • 한들신문
  • 승인 2021.02.22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평빌라

진작 말 좀 하지 그래. 너 누이가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노.”

누나를 보내고 일 년쯤 지나 아저씨는 고모를 찾아갔다. 말이 없던 조카가 인사하고 안부를 묻자 고모가 놀랐다. 일 년만 일찍 말문을 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고모는 이내 느꼈다. 병석에서 손잡던 누나에게, 마지막인 줄 몰랐던 그 날, 그럴듯하게 딱 한 마디라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저씨의 말이 늘수록 커졌다.

아저씨가 말문을 연 건 지난여름이다. 아저씨는 6년 일한 농장 주인집 아래채에 전세를 얻었다. 대학생 두 명이 아저씨의 이사와 자취를 도왔다. 도시 아가씨는 애교가 넘치고 말씨가 싹싹하고, 시골 아가씨는 차분하고 예의가 몸에 배었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아저씨를 도와 고추 따고 복숭아를 땄다. 도시 아가씨는 모든 게 낯설다. 풋고추를 내밀며 아저씨, 이거 따면 돼요?” 묻기 일쑤. 보다 못한 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그거 따면 안 돼!”

오십 평생 닫혔던 말문은 그렇게 열렸다. 도시 아가씨가 내미는 풋고추에 참다 참다 말문을 열었다. 자기보다 연약한 존재, 자기라도 살펴야 할 존재, 자기가 가르쳐야 할 존재를 오십 년 만에 만났다. 그래서 말문을 열기로 작정했다.

평생 남의 집 종살이하듯 살았던 아저씨, 그의 삶에서 그가 나설 일이나 참견할 일은 없었다. 그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하면 하루하루가 지났다. 아저씨에게 삶은 그런 것이었다. (1편 요약)

월평빌라 실습생은 4주 동안 밥과 김치만 먹는다. 수련이다. 이사하는 날, 아저씨에게 맛있는 거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물론 애교 많은 도시 아가씨가 그랬다. 다음 날 새벽, 아저씨가 밥해 놓았으니 먹으러 오라 했단다.

어느 날은 학생들 고생한다고 아저씨가 밥을 샀다. 고깃집에 갔다. 실습 중 밥과 김치는 온데간데없고! 아저씨가 반찬 그릇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단다. “상희야, 많이 먹어라. 지연이는 고기 못 먹어서 어째. 미안하네.”, ‘많이 먹어라, 미안하네.’ 이런 말은 하늘이 두 쪽 날 일이다.

농장 사장님이 아저씨와 함께한 지 6, 월평빌라 직원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런 사장님도 아저씨가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기는 마찬가지! 실습 수료식에 농장 사장님과 사모님이 참석했다. 사장님에게 한 말씀 부탁했다.

사장님은 학생들에게 많이 배웠다고 했다. 아저씨 그릇 사러 같이 갔는데, 대답 없는 아저씨에게 어떤 그릇 살 거냐,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하고 학생들이 하도 물어서 사장님 내외가 그랬단다. “물어도 대답 없는 사람에게 뭘 저래 자꾸 묻노.”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보름 못 가서 아저씨 말문이 열렸다.

실습 마칠 무렵, 학생들이 아저씨 부모님 소식을 물었다. “벌써 돌아가셨지.” 보고 싶지 않냐고 다시 물었다. “, 보고 싶지. 부모님 살아 있을 때 잘해.” 실습 수료식에서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 학생들은 아저씨와 지낸 이야기를 나누다 끝내 울었다.

 

나를 돕는 사람이 전지전능하면, 그보다 큰 불행이 없겠다. 그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모르는 것이 없고, 그의 선택은 항상 올바르며 최선인, 그런 전지전능한 사람이 나를 돕겠다면 어쩌나!

그 앞에서 나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그는 나에게 선택하고 답하라 하지만, 그의 전지전능 앞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라 하는데, 나는 그 앞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주저한다. 그는 전지전능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다 안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만 골라서 해 보라 하는데 그마저 하지 못할까 두렵다. 어떤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해 볼 만한 것마저 그가 한다. 그의 전지전능함으로.

전지전능한 그에게 많이 먹어요.”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있을 수 없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해요.” 하는 건 그도 나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내가 한번 해 볼게요.’는 안 된다. 그가 이거 한번 해 보실래요?” 하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나를 돕는 사람이 좀 만만하면, 그보다 큰 행운도 없겠다. ‘나라도 챙겨야겠다.’ 할 만큼 연약하면 좋겠다. 그런 연약한 자가 나를 도우면 좋겠다. 실습 수료사 중에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