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낯선 것을 익숙하게, 익숙한 것은 낯설게(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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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낯선 것을 익숙하게, 익숙한 것은 낯설게(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 한들신문
  • 승인 2021.02.2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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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여성회 회장 김귀옥

2020년은 낯선 것들을 맞이하는 일로 시작했다. 2월 말 3월 초의 집단 감염을 신호로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봄꽃으로 화사한 3월 거리는 상춘객들을 지워버린 듯 텅 비어 고요했다. 매년 봄마다 음원 차트를 다시 오르는 그 벚꽃 노래의 가사처럼 흩날리는 봄꽃에 매료되어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 그 거리를 가득 채운 정적이 낯설고도 조금은 공포스러웠다. 이 시절을 보내며 예전에 불교 공부를 하며 접했던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생처방교숙, 숙처방교생)- 수행의 요체는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고, 익숙한 것은 다시 낯선 것으로 한다 - 이것은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또 성찰하라는 은유적 처방이라 생각한다. 이 가르침으로 나의 가장 가까운 곳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낯설게 보기 첫 번째, 그것은 우리 여성회 사무실이다. 여성회 사무실은 사무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조금 민망한 규모이다. 하지만 그 사무실에서는 누리보듬 생협 활동가를 비롯한 회원들이 많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누추하지 않은 살이를 유지한다. 회원들은 기꺼이 먹거리나 살림살이를 공유하고 설거지나 청소는 누군가가 소리 없이 해둔다. 또 회원들이 가져다 놓은 쇼핑백과 상자, 아이스팩이 사무실 한쪽 구석을 차지하지만 며칠 뒤 필요한 누군가가 사용함으로써 또 비워지기도 한다. 이런 순환 시스템은 회의를 통한 결정이 아닌 이곳을 드나드는 많은 여성들과 그 가족들의 자발성에 근거한다. 이것은 작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코로나 블루로 인하여, 블루가 아닌 함께 하고 있음으로 동지적 연대를 확인하면서, 익숙했던 여성회 공간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이런 환경을 가능하게 한 우리 회원들의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참 귀하고 고마웠다.

낯설게 보기 두 번째, 우리는 그동안 참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잊고 지냈다. 여행, 모임, 워크숍, 여성회의 트레이드 마크인 벼룩시장 등, 개인적인 모임이나 조직적인 일들은 예전처럼 마음먹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의미 있고 좋을지라도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주장하며 국가방역조치에 항의하는 미국과 유럽의 시위대를 보며, 그런 주장을 증명하듯 코로나 환자의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며, 우리가 알아왔던 개인의 자유를 낯설게 보게 되었다. 저 주장 속에 있는 자유와 존엄이 야만적으로 보인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자유연대와 충돌하는 것이 아닌, 펜데믹(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 시대에 다시 들여다봐야 할 근본적인 이슈가 아닐까 싶다. 그냥 소박한 나의 생각은 이런 것이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남과 어울려 사는 사람들은 공동의 시스템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요즘같이 거리두기집콕은 우리를 개인으로 내몰거나 혼자임을 실감 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펜데믹 이후 더 단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한 사람이 주는 영향력의 크기,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의존하는 우리들의 관계, 세상의 모든 는 혼자가 아니란 것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거창여성회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우리는 우리를 혼자인 채로 두지 않고, 또 그래서 허무주의로 내몰지 않아, 다시 한번 연결의 감각을 구석구석 모두에게 선사하리라 생각한다.

2020년을 보내고, 맞이하게 된 2021년 시작점에서 위의 두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코로나 19 사태는 인간 활동의 불가피한 부작용정도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언제까지 방역 시대를 살 수는 없다.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임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축하고 발명하는 것이다슬라보이 지제크의 경고를 떠올리며,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고, 익숙했던 것을 낯설게 하자는 말을 우리 여성회 회원들에게 건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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