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78)「숲 속의 요술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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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78)「숲 속의 요술물감」
  • 한들신문
  • 승인 2021.02.2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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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임혜윤
하야시 아키코 글/그림 / 고향옥 옮김 / 한림출판사 / 1999.8
하야시 아키코 글/그림 / 고향옥 옮김 / 한림출판사 / 1999.8

서서히 스며들어 예쁘게 물들어 가라!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위해 책을 고르고 읽어주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제야 책을 아주 조금 좋아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핑계를 대자면 내 어린 시절에는 지금만큼 재미있고 화려하고 다양한 책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서양의 책을 들여와 우리의 정서와 전혀 맞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싫어하는 훈계나 교훈적인 내용이 대부분이고 값도 얼마나 비싸던지. 게다가 지금처럼 도서관이 가까이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요즘은 어떠한가요?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책을 사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양질의 책을 아이에게 실컷 보여 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많은 책들 중에 오늘 소개할 책은 재일교포 2세 하야시 아키코의 숲 속의 요술물감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반가운 친구로, 어른들에게는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아이들의 감정을 알아가고 이해하기에 알맞은 책입니다.

옆으로 긴 직사각형 판형에 들풀 사이에 토끼보다 귀여운 아이가 보입니다. 손에 들려진 붓에는 여러 색깔의 물감이 잔뜩 묻어 있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보니 신나게 물감 놀이를 했나 봅니다.

면지를 보니 자벌레 한 마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책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자벌레를 따라 들어간 이야기 속엔 아이와 터울이 있어 보이는 오빠가 있습니다. 동생 이름은 누리라고 합니다. 숲 속 풍경화 그림을 그리는 오빠를 보며 누리도 물감을 만지고 무언가 표현해 보고 싶어 안달이 납니다. 아이들은 색연필이나 크레파스도 좋아하지만 특히 물감을 더 재미있어합니다. 새로 산 물감이라 동생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에 오빠는 물감 주기를 망설입니다. 귀여운 동생이 자꾸 조르니 안돼, 안돼를 외치던 누리의 오빠는 인심도 좋게 쓰라고 합니다. 물론 물감 뚜껑 잘 닫고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당부는 잊지 않았습니다.

누리는 오빠가 하는 것처럼 알록달록 멋진 그림을 그리려고 해 보지만 요령이 없어 붓은 범벅이 되어 진흙탕이 되어 버린 그림이 되었습니다. 새롭게 해 볼 요량으로 팔레트와 물통을 씻어 오는데 뱀이 빨간 물감을 물고 가는 걸 목격하고 따라갑니다. 그곳에선 숲 속 동물들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누리의 등장으로 일순간 흩어집니다. 남아 있는 자벌레 한 마리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물감을 짜주고 있자니 도망갔던 동물들이 슬금슬금 다시 모여 들여 모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숲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누리의 친구가 되고 열심히 그림에 열중하여 놀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기만 합니다. 걱정이 된 누리의 오빠가 누리를 찾았을 때는 누리의 그림은 아까의 진흙탕 그림이 아닙니다. 오빠가 보기에도 근사한 그림이었는지 오빠는 벌렁 넘어지기까지 하며 감탄까지 합니다.

아이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판타지를 느끼게 해주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 속의 인물들이 바로 내 앞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선이 깔끔하고 자세나 움직임이 어디 하나 허술한 곳이 없어 아이들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지고 부드러운 색감에서 따뜻함이 느껴져서 푹 빠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그림책들은 선명하고 단순한 색깔, 마치 옆에서 아기들을 보고 그린 듯한 생생함.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 구조가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또 이 책을 보는 우리나라 아이들도 서양 그림책과 달리 자신과 닮은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점이 훨씬 친근하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다른 특징은 실제 그림 자체가 아이의 눈높이로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보통의 그림책들에선 볼 수 없는 주위 풍경의 잘림이 특히 심한데, 이것은 실제 아이의 키에서 볼 수 있는 주변의 풍경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아이의 동작을 그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며 항상 조카들 사진을 참고로 한다고 합니다. 한참을 곁에 두고 아이와 하나가 된 후에 작품 속에서 아이와 내가 함께 팀을 이루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니 그녀의 책들은 세월이 흘러도 독자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현실과 환상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함께 존재한다고 합니다. <숲 속의 요술물감>을 보면 하야시 아키코가 얼마나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포동포동한 얼굴, 분홍빛 뺨, 보기만 해도 쪽 입맞춤을 하고 싶어질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나오는 그녀의 그림책 속에는 이렇게 어른의 눈을 통해서가 아닌 살아있는 어린이의 마음과 세계가 놀랄 만큼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가슴 아픈 아동학대 사건들을 들을 때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들이 많아져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사랑받고 귀하게 서서히 물들어 가며 예쁘게 자리기를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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