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빌라 이야기 마흔두 번째]쫓아가지 마라!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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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이야기 마흔두 번째]쫓아가지 마라! (1편)
  • 한들신문
  • 승인 2021.03.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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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빌라

대학생 때 어느 복지단체에서 주관한 캠프에 진행요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캠프 시작에 앞서 한 가지 행동 지침을 들었습니다.

쫓아가지 마라!”

참가자가 어디로 뛰어가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으니 잡으려 하거나 쫓아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사자의 행동을 인정하라는 의미였습니다. 캠프 내내 그러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누가 불쑥 일어나 뛰면 저도 모르게 쫓아갔습니다.

한 번은 쫓아가는 제 모습에 놀라 흠칫하여 멈추고, 멀찍이서 지켜봤습니다. 대개 어디까지 가면 스스로 멈췄고, 멈춘 자리에서 혼자 무엇을 하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주저앉기도 했습니다. 그때 다가가 제자리로 오게 하거나 같이 그 자리에 있으면 됐습니다.

쫓아가지 마라, 강렬했습니다.

월평빌라 문을 연 지 벌써 십 년입니다. 그사이 무디어지고 허술해진 곳을 살핍니다. 깨어 있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잘못을 범합니다. 그렇게 되기 쉬운 현장이 복지시설입니다. 깨어 있으려면 말과 행동과 생각을 쉼 없이 다듬어야 하지만 몇 마디 말이라도 끄집어내서 다듬습니다.

 

1. “안 돼요. 하지 마세요.”

시설 입주자가 안 돼, 하지 마이런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겨우 몇 마디 할 줄 아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안 돼, 하지 마일 때는 정말 부끄럽습니다. 얼마나 들었으면.

물론 그 말을 누구에게서 배웠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시설 직원에게 얼마쯤의 책임이 있겠지요.

안 돼, 하지 마는 그의 삶이 얼마나 간섭받는지 보여줍니다. 이미 겪는 어려움이 클 텐데, 거기에 돌덩이 하나를 더 얹는 거죠.

안 돼. 하지 마.’ 하는 저를 볼 때가 있습니다. 미안하고 민망합니다. ‘이렇게 할래요? 이거 할까요?’ 하겠다고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습니다. ‘안 돼, 하지 마’, 아예 쓰지 않겠다고 단단히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겠습니다.

 

2. 올바른 호칭과 친구’.

우리말에는 높임말이 있습니다. 높임말을 격식에 맞게 쓰지 않으면 양반 소리 듣기 어렵습니다. 상대에게 오해를 받고 돌아서면 욕을 먹습니다. 시설 입주자와 직원 사이에도 높임말을 올바르게 써야 합니다. 나이를 따지고, 직원과 입주자라는 관계를 헤아려서 써야 합니다. 친하다고 낮추거나, 친근한 표시로 낮추거나, 입주자를 마치 어린아이로 여기고 낮추면 안 됩니다.

월평빌라는 ‘2015년 호칭 워크숍에서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의사소통 가능한 입주자는 당사자가 원하는 호칭을 쓴다.

성인 입주자는 홍길동 씨, 길동 씨, 아저씨, 아주머니, 아가씨, 총각, 어르신 가운데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사용한다.

미성년 입주자는 김철수 군, 김영희 양, 길동 군, 영희 양, 길동아 가운데 상황에 따라 선택해서 사용한다.

입주 시 미성년이었다가 성인이 되면 성인 입주자에 맞는 호칭을 사용한다.

공문서에는, 성인 입주자는 홍길동 씨로, 미성년 입주자는 김철수 군, 김영희 양으로 한다.

일지는, 공문서이지만, 일상의 호칭으로 기록한다.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부를 때는 성과 이름을 모두 붙여야 한다. 홍길동 씨, 홍길동 아저씨, 김영희 아주머니. 나이 어린 직원이 길동 아저씨, 영희 아주머니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홍길동 씨도 어색할 때가 있다.

7가지는 기본이다. 입주자와 직원 사이라도 위아래를 살피고 올바른 호칭을 사용해야 한다. 2015417, 호칭 워크숍

 

우리말 호칭의 기본을 정리한 겁니다. 월평빌라 형편에 맞춰 따로 정한 게 아닙니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기본입니다. 입주자와 직원의 관계를 헤아리면 위아래만 따져서도 안 됩니다. 가능하면 존대하는 게 좋습니다. 어린아이라도 반말로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대하는 게 좋습니다. 호칭만 제대로 써도 함부로 대하기 어렵습니다. 호칭으로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말을 다듬습니다.

좋은 뜻으로 쓴다는 친구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친근한 표시? 그렇게 불러도 되는지? 입장 바꾸면 어떨지? ‘친구라 부른 다음에 격식에 맞춰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시설 입주자를 친구라 하면 낮춰 부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어린아이 취급하는 느낌입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유치원 아이를 부르는 억양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대할 것이고, 돕는 방법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친구는 친구 사이에 쓰는 게 좋겠습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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