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송-굽은 소나무
이경재
야트막한 언덕배기 양지바른 한켠
이제는 쪼르르 달려와
오손도손 놀아줄 아이도 없는
한적한 앞마을 바라보며
목 놓아 울음 울꺼나
저기 굽은 허리 애고애고 두드리며
신경통 관절통 고생 고생만 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할아버지 할머니 늙은 인생길
구시렁구시렁 말동무나 하며
시름시름 나도 따라
또 한세월 휘감기며 굽어나 볼꺼나
아무짝에 쓸모없는 굽은 소나무
아서라, 누가 날더러
고향의 아름다움이라 했던가
그나마 남은 흙무지랭이 사람들
송장 칠 젊은이도 부족한
초라한 상여길 뒤편에 서서
지난해 11월 거창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배 할매들이 학교로 다시 모여든 것이다. 폐허가 된 학교를 손수 쓸고 닦아 배움터를 마련하였고, 당신들의 삶을 한 줄 한 줄 글로 엮었다.
큰 딸 희자야 / 나 엄마다 //지금은 너나 나나 같이 늙어가는구나 / 네가 집을 떠나서 / 돈을 벌러 나갔을 때 /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 네가 동생들 여섯을 다 키우느라고 /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 세월은 이리도 허망하구나 // 부모로서 너를 너무 고생시켜서 / 내 마음에 한이 맺힌다 // 내 큰 딸 희자야 /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거창군 웅양면 장지마을 이정남의 詩(시) <큰딸 유희자에게, 전문>
머물면 떠나고 싶고 떠나면 그리운 곳이 어머니의 품이고 고향이 아닐까? 이경재 시인의 <곡송>을 읽으며 불현듯 이 시가 생각났다. 어머니의 시를 읽는 큰딸 유희자 씨의 마음과 20년 전 시인의 詩心(시심)은 서로 틀릴 수가 없다. 전화기에 손을 올리시라. ‘내 큰 딸 희자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않는가.
말라 비틀어진 굽은 허리 뉠 자리 찾으며
꺼이꺼이 목놓아 통곡이나 할꺼나
『원기마을 이야기, 도서출판 살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