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짜리 초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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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원짜리 초롱꽃
  • 한들신문
  • 승인 2021.03.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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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사장 표정숙 조합원
초롱꽃 군락
초롱꽃 군락

플라스틱 화분에 무성하게 자란 푸성귀를 보고 계속하던 의심을 했다. 무슨 초롱꽃이 산나물처럼 자랄 수가 있어? 혹시 산나물 아니면 잡초? 고추를 심었던 화분이라 거름기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고급스러운 초롱꽃이 잡초처럼 번식한단 말인가? 헛고생할 필요 없이 진작에 뽑아버릴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무관심 속에 내버려 뒀었다. 아무리 잡초라도 말라죽는 꼴을 볼 수가 없어 물을 주었더니 보란 듯이 무성하게 자랐다.

약초축제에 가면서 놉을 원했지만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가기 뭣 해서 연세 많은 친구 고모님께 연락했더니 지난밤 꿈자리가 좋더니 무슨 횡재냐 하며 좋아했다. 꽃을 좋아하고 잘 돌보는 분이라 선심 쓰는 셈 치고 같이 갔다. 노인과 보조를 맞추는 일은 즐거운 일이 못 되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으로 시들시들한 약초들을 보는 것이 오히려 민망하고 안쓰러웠다. 이름이 약초축제지 약초 수난제였다. 사람들 역시 무슨 신선초라도 있을까 뭉그적뭉그적 몰려들었다. 주차할 자리도 쉴 자리도 모자랐다. 그런데도 고모님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보이는 것마다 한 마디씩 토를 달고 해석을 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열이 머리 쪽으로 뻗쳤다. 차라리 혼자 왔어야 한다고 후회를 했다.

먼지 이는 땡볕을 몇 바퀴 돌았더니 목도 마르고 허기도 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입이라도 다시고 가야 하지 않겠나 싶어 도토리묵을 파는 난전으로 들어가 묵을 시켰다. 고모님은 자기가 낼 돈도 아니면서 미안함을 무마하려고 비싸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해서 도토리묵 맛이 떨어지게 했다. 친구 고모님이라 불평도 못 하고 화는 더욱 낼 수 없어 더운 날씨 타령만 했다.

노력해도 영 얼굴 상판이 펴지지를 않았다. 즐거워하는 고모님을 재촉했다. 기어이 고모님은 찍어 둔 자란 꽃 한 포기를 10분도 넘게 골라서 샀다.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는 천 원짜리 초롱꽃 두 포기를 골라서 한 포기를 나에게 주었다. 선물치고는 대단했다. 속으로 진짜 초롱꽃이라면 그렇게 쌀 수는 없다는 의심이 들었다.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맘이 있어 주려면 자란 꽃이나 한 포기 사 줄 것이지, 거저 주어도 받기 싫은 검정 비닐 컵에 아무렇게나 심어진 이름만 초롱꽃인 잡초를 선물로 주다니!

돌아오는 동안 고모님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했다. 덕분에 좋은 구경하고 구하고 싶은 꽃도 구하고 좋아하는 도토리묵까지 먹었으니 꿈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고모님은 기억나는 약초에 대해, 준비한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 건성으로 대답을 하면서 즐기지 못하고 불만만 많은 자신이 한없이 짜증스러웠다.

소중하게 챙겨 주는 고모님의 초롱꽃을 버릴 수 없어서 아무렇게나 화분에 심었다. 그런데 죽지도 않고 잘도 살아서 자꾸만 포기 나누기하더니 화분 가득히 자란 것이다. 초롱꽃일 리 없다고 이미 판정을 내리고 물을 줄 때마다 구박했다. 차라리 먹는 나물이면 좋겠다. 뜯어서 쌈 싸 먹게, 묻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천 원짜리 초롱꽃이라고, 선물 받았는데 초롱꽃이 아닌 것 같다고 의심을 확실하게 전달하곤 했다.

계절의 왕 5월이 되면 나는 고통스러운 기억들 때문에 허우적거린다. 화려한 5월만큼 비참하게 안팎이 비비 꼬여서 죽을 지경이 되곤 한다.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내 꼴처럼 말라가는 화분에 물을 주면서 나를 이겨 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따가운 해도 기세를 접어 서산으로 피하고 풋풋한 녹색 향이 짙게 풍겨오는 저녁, 천대받던 초롱꽃 화분 가득히 야릇한 꽃대가 수없이 솟아나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그것이 초롱꽃 꽃대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무슨 대가 이렇게나 많이 올라오나 싶었다. 이삼일이 지난 후 꽃대들은 늠름하게 자라서 셀 수 없이 많은 초롱 등을 매달고 칙칙한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천 원짜리 잡초가 몇만 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초롱 등을 받쳐 들고 있었다. 기쁨 대신 죄의식(?) 같은 것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천 원짜리라고 그렇게 구박한 자신이 창피하고 미안해서 거듭거듭 사과했다. ‘미안해, 고마워보는 사람마다 감탄사를 쏟아 놓았다. 마치 나의 업적이라도 되는 양 초롱꽃의 과거를 늘어놓았다. 친구가 나를 째려보며 인간아! 인간아!’ 구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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