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위에 부는 바람, 물 위에 뜬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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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위에 부는 바람, 물 위에 뜬 배
  • 한들신문
  • 승인 2021.03.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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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옛날에는 백성을 풀에 견주었다. 그래서 민초라고 했다. 잡초 인생이란 뜻이다. 요즘도 이 말을 쓴다. 그러나 뜻이 다르다. 이제는 민초가 주인이다. 그게 민주정치다. 그런데도 아직도 민초를 종으로 아는 공직자가 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나쁘게만 변해가니, 두고 보기 안타깝다.

 

민초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말했다. “왕은 바람이고, 백성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왕이 좋은 정치를 하면 백성이 복종한다는 말이니, 좋은 뜻이다. 워낙 유명해서, 예전에 글깨나 읽은 사람들은 너나없이 줄줄 외우던 구절이다. 왕조시대에나 통하는 말이다.

 

시인 김수영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휘두르면 민중이 반드시 쓰러진다는 말을 거부했다. 그래서 뒤집었다. 풀이라는 시에서다. 대략 이러하다. ‘날씨가 흐리면, 풀은 바람보다 빨리 눕는다. 누워서 울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국어 교과서에도 실렸으니, 공자의 말에 뒤지지 않는다. 이승만 독재에 울고, 4.19의 좌절에 울고, 박정희 독재에 울었던 시인이, 죽기 보름 전에 쓴 시다. 1968년의 일이었다.

 

바람은 권력이고 풀은 민중이다. 바람도 변했고, 풀도 변했다. 독재에서 민주로, 종에서 주인으로 바뀌었다. 멋진 뒤집기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은 것은, 세칭 고위 공직자의 사고방식이다. 아름다운 고장 거창에서 볼썽사나운 일이 끊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것이 문제다.

 

선거에서 당선되었는데, 왜 맘대로 못하노?” - 비단 선출직뿐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공무원도 꽤 있는 모양이다. 자못 걱정스럽다. 민주정치에 정면으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과정의 정치이다. 그래서 선거제도, 투표제도, 소환제도 등을 갖추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당선이 만사가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그것을 모르면 심각하다.

 

조선 시대 왕도 그러지 않았다. 왕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인사와 정책에 대해서 간언을 받았다. 조선 왕조가 5백 년 동안 계속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려 시대에는 더했다. 왕이 고집을 부리면, 중앙의 관리들이 일괄 휴가를 내 결근했고, 결국 왕이 굴복했다. 왕조시대에도 그랬다.

 

민주주의는 독선의 정치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거창에서 일어난 큰 갈등만 보더라도 알 것이다. 교도소 문제가 그렇고, 국제연극제 문제가 그렇다. 일일이 지적하자면 끝이 없다. 거창 군민이 무슨 죄인가? 되물어 볼 일이다. 반대 의견을 내는 군민들을 적대시하지는 않았는가? 군 재정을 자기 쌈짓돈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는가? 몇몇만 짝짜꿍 하지는 않았는가?

 

해결책은 무엇인가? 어려울 것이 없다. 근본을 바로 세우면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맹자의 말을 참고할 만하다. 전국시대, 맹자가 제나라에서 벼슬할 때였다. 제자가 물었다. 왜 왕에게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고. 맹자가 말했다. 그래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나쁜 관리를 쫓아내면 몇 년 후 다시 등장하고, 나쁜 정책을 물리치면 몇 년 후 다시 시행되니, 왕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지금 거창이 그렇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민주주의에 충실하라. 독선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독선의 결과는 무엇인가? 이번에는 공자가어에서 뽑아 보겠다. 물과 배의 비유다. 공자가 말했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 후대에 많은 사람이 이 말을 아끼며 반복했다. 유명하기는 순자와 당 태종의 글이며, 가까이는 남명 조식 선생의 민암부라는 글도 있다. 여기서 배는 권력자고, 물은 백성이다. 치세에는 백성이 왕을 받들지만, 난세에는 백성이 왕을 파멸시킨다.

 

민주주의 원리도 똑같다. 대표적인 민주정치 이론가인, 영국의 존 로크를 보라. 그는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 민중이 무력으로 저항할 수 있는 권리”, 즉 저항권을 인정했다. 벌써 30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의 사상은 영국의 명예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 두 나라, 그리고 현대 민주정치의 기초다. 민주정치는 저항권, 즉 혁명권까지 보장하고 있는 제도이며, 지방자치제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현대는 풀과 물이 주인인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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