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耳順)의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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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의 취업
  • 한들신문
  • 승인 2021.04.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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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연 조합원

히야, 세상 변한 걸 새삼 실감했다. 노는 사람이 없네.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바쁘네.”

저녁상 자리에 앉으며 남편이 말한다.

그래, 60대 취업률이 가장 높아.”

대한민국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육십 대 부부의 대화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이순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직장인이 되었다.

 

나의 연식 정도쯤 되는 여인들의 경우 평생 아무 직업을 가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혹 가지더라도 결혼 전 쉬어가는 코스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했으리라. 나 역시도 그런 사고에 익숙해 있었겠지만, 그야말로 재주가 과하여 직업을 가지지 않은 채 보낸 시간이 유년기 외엔 별로 기억에 없다.

여러 직업을 거쳤지만, 최근까지 가장 오랫동안 종사한 업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무려 20년을 넘게 했으니 내게 맞는 일이었나 보다. 어릴 때 사주를 보러 가니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어쩌고저쩌고하니 옆에 있던 올케가 선생 된다는 말이야. 나도 그랬어.’라며 정리를 해 주었다. 과연 선생이 되긴 했으나 관과 인연이 박한 나는 학원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제법 자부심과 보람도 느끼며 즐겁게 한 10여 년을 보냈지만, 그 이후 몇 년은 긴가민가하며 보냈고 끝 무렵 몇 년은 한계에 다다라서 진저리를 치며 보냈다.

당연히 재주 많은(?) 나는 전업을 위한 계획을 세운다. 대개 자기가 살아온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모험을 즐기는 자로서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졌다. 우선 나에 관해 탐구를 해보자. 늘 해도 즐겁고 지치지도 않고 그래서 늘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요리더 넓게는 음식과 관련된 모든 일을 내가 거의 놀이로 생각할 만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취미로 하는 일과 직업으로 하는 일은 특히나 이런 진일은 직업으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고 어쩌면 취미가 혐오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많은 이들이 의견을 보탰다. 그럴지도. 아마도 아주 많이 그럴지도.

 

우연히 노인 주간 보호 센터라는 데를 가게 되었다.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터였다. ‘! 그래, 사람이 모이는 모든 곳은 음식을 먹지. 딱이다. 그래 이런 곳에서 일해보자. 어쩜 글 쓸 소재도 많이 찾겠는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고 요리 학원에 등록했다. 당연히 칭찬 일색. 너무 잘한다고 난리였다. 재미있기도 하고. 그다음 단계, 직업으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실험을 해봐야 한다. 하루 2시간짜리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어서 현장 적응을 해 보았다. “어머, 되네!” 물론 적응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했지만, 곧 실력자란 평가를 받으며 즐겁게 일을 하며 곧 자격증도 땄다. 그다음 단계. 당연히 풀타임으로의 이동이었고 또 그렇게 되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병원 조리실에 취직했다. 처음 목표는 주간 보호 센터나 빨간 날마다 노는 유치원이었지만, 우선 먼저 잡히는 대로 그리고 아주 가깝다는 장점에 냉큼 취직했다. 변신 성공! 친구들의 걱정과 격려를 더 하여 존경까지 받으며 출근. ‘어머, 분위기 왜 이래?’ 원래 낯선 자에게 까칠한 것이 보통의 반응이겠지만 이곳의 공격성은 좀 남다른 듯. 특히 조리사가 난리를 친다. 나름 늘 환대 속에서 살았다고 느끼는 나로서는 이색적인 느낌이었다. 그러나 사람끼리는 부대끼면 대충 다 친해지는 법. 그러면서도 너무 큰 조리 기구와 필요 이상의 과한 동작들에 약간의 주저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어머나! 권고사직이라니 살다 살다 이런 걸 다! 사람이 나이 들어 살 만큼 살아도 새로운 일은 늘 생기는구나.

세상은 어느새 변하여 실업급여라는 것을 준단다. 아직도 경험할 것이 많은 세상에 또 한 번 감사! 때는 7월이라 날씨가 더워지면 여기 이 불 구덩이에서 어찌 견딜까 했는데, 참 공교롭게도 실업급여 받으며 휴식이라니 그것도 최장 8개월을. 다들 잘 됐다고, 추석에다 설까지 쇠고 새해에 슬슬 취직하면 되겠다고, 생애 최초의 유급휴가. 애들 집에도 가고, 여행도 하고. 멋지다! 그러나 설을 쇠면 이놈의 나이가 한 살 더 올라갈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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