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가정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꿈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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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가정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를 꿈꾸기
  • 한들신문
  • 승인 2021.04.0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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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신철규 시인

만약의 생

신용목

창밖으로 검은 재가 흩날렸다 달에 대하여

 

경적 소리가 달을 때리고 있었다

그림자에 대하여

 

어느 정오에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왜 다음 생에 입을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냐고

그림자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개켜 넣을 수납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어김없는 자정에는 발가벗고 뛰어다녔다

 

불을 끄고 누웠다

그리움에도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

 

신은 지옥에서 가장 잘 보인다

 

지옥의 거울이 가장 맑다

 

아무 날의 도시, 문학과지성사


우리는 이 세계에 한 번 오면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다. 전생과 후생의 틈바구니에 낀 현생은 어떤 가정도 허용치 않는다. 창밖으로 검은 재가 흩날릴 만큼 현생은 답답하고 우울하다. 한밤중 달에 대고 경적을 울리고 그림자를 벗어버리기 위해 벌거벗고 뛴다고 해도 운신의 폭은 조금도 넓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비정한 사실에 대한 의문은 우리를 우울하게 할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의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의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 ‘그리움의 스위치는 항상 켜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구원과 희망은 신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만약 당신의 눈에 신이 그 모습을 뚜렷하게 나타낸다면 당신은 그만큼 더 불행한 것일 수 있지만, 구원을 꿈꾸는 자는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나와 타인, 내 안의 그리움과 내 바깥의 부조리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가장 맑아진 순간이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절망이 희망으로 탈바꿈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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