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사회]땅콩회항 사건과 죄형법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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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사회]땅콩회항 사건과 죄형법정주의
  • 한들신문
  • 승인 2021.04.1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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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문상변호사
권문상변호사

<사례>

2014125일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던 조현아는 뉴욕발 인천행 대한항공 KE086편에 1등석 승객으로 탑승했다. 승무원 김 모 씨는 미개봉 상태의 견과류 봉지를 서빙했는데, 그것이 매뉴얼에 맞는지의 문제로 박창진 사무장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이미 활주로에 들어서기 시작한 비행기를 회항시키고 박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이는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결국 조 전 부사장은 201517일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되었다. 이 사건을 승무원이 조현아에게 제공한 견과류가 우리나라에서는 땅콩류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마카다미아넛이라 일명 땅콩회항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죄형법정주의란?

죄형법정주의란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형벌도 없다.”라는 근대 형법의 기본 원리이다. 어떤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려면 그 범죄와 형벌이 반드시 법률로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국가의 과도한 형벌권 행사로부터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려는 근대 인권 사상의 요청으로 등장한 원리이다. 범죄와 형벌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는 이유는, 법률이 국민의 대표인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는 의회에서 제정하는 법 규범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회에서 제정하는 법률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성문법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반 국민도 무엇이 범죄이며 그 범죄에 대해 어떤 형벌이 부과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죄형법정주의의 구체적인 원리로는 관습형법 금지의 원칙, 소급효 금지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과 적정성의 원칙, 유추적용 금지의 원칙, 그리고 형벌 법규에 처벌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법문의 용어를 보통 쓰이는 의미보다 넓혀서 해석하는 확장해석 금지의 원칙 등이 있다.

 

사례에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적용

항공보안법의 항로변경죄는 운항 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해야 하는데 과연 지상에서 이동 중인 항공기를 되돌아가게 한 것이 항로를 변경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 되었다. 1(서울서부지법 형사12)은 조현아에게 1년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항로변경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다른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은 판단이었으나 법정형이 가장 높은 항공보안법 위반(항로변경죄)에 대하여는 무죄를 선고하였고 그 판단은 대법원에서도 유지되었다. 항로변경죄의 항로에 대하여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달랐으며 대법관들도 견해가 나뉘었다. 그러나 최종 결론, 즉 대법관 다수의 판단은 항공보안법에 항로의 개념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이상 원칙적으로 사전적인 정의와 같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의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항로를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로 정의하며 항로는 공중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결국 육상에서 비행기를 돌린 것은 항로의 변경은 아니므로 처벌규정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상에서 이동하는 항공기의 경로를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다른 항공기나 시설물과 충돌할 수 있어 위험성이 큰 행위임이 분명하다고 하면서도 처벌의 필요성만으로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것이다. 다만 필자 개인적인 견해는 대법원 다수 견해와는 다르다. 항공보안법에서 처벌 대상은 “‘운항 중에 항로를 변경하는 것이며 위 법에서 운항 중승객이 탑승한 후 항공기의 모든 문이 닫힌 때부터 내리기 위하여 문을 열 때까지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항로 또한 운항 중과 연결시켜 지상과 공중을 포함한 항공기가 다니는 길로 해석하여 유죄를 선고하여야 한다는 대법관 소수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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