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82)「고양이」
상태바
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82)「고양이」
  • 한들신문
  • 승인 2021.04.19 1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정윤
현덕 글 / 이형진 그림 / 길벗어린이 / 2000.09
현덕 글 / 이형진 그림 / 길벗어린이 / 2000.09

나처럼 해 봐라 이렇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연둣빛,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산을 바라보면 어찌나 싱그러운지 감탄사가 절로 난다. ‘히야, 봄이로구나!’

인생에서 봄은 언제일까? 물어보나 마나 유년시절이다.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던 그 시절, 우리 모습은 어땠을까?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책이 있다. 궁금하신가? 그럼,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살살 앵두나무 밑으로 노마는 갑니다. 노마 담에 똘똘이가

노마처럼 살살 앵두나무 밑으로 갑니다. 똘똘이 담에 영이가

살살 똘똘이처럼 갑니다.

 

그리고 노마는 고양이처럼 등을 꼬부리고 살살 발소리 없이

갑니다. 아까 여기 앵두나무 밑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이렇게

살살 가던 것입니다. 검정 도둑고양입니다.

 

여기 나오는 우리의 주인공들은 노마, 똘똘이, 영이다. 세 명이 지금 고양이 흉내놀이에 빠져있다. ‘다음에라는 말을 담에라고 썼는데 아마도 그 당시 서울 사투리인 거 같다. ‘살살이라는 단어 속에 고양이처럼 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별 말이 없고 내용이 없는데도 계속 미소 지어진다. 그림도 배경은 최소한으로 하고 아이들의 모습과 표정을 잘 잡아 군더더기 없이 그렸다.

 

ㅡ아옹아옹, 아옹아옹.

ㅡ아옹아옹, 아옹아옹.

노마는 고양이 모양을 하고 고양이 목소리를 하고,

그리고 고양이 가던 데를 갑니다. 그러니까, 어쩐지

노마는 고양이처럼 되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똘똘이도 그래졌습니다. 영이도 그래졌습니다.

 

고양이 우는 소리를 아옹아옹이라고 표현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야옹야옹보다 더 사실적인 거 같다. 모음 하나 달리 썼을 뿐인데 이렇게 느낌이 달라지다니. 현덕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놀라지 마시라. 이 작품은 1938년에 출간된 <조선아동문학집>에 실려 있는 동화로, ‘노마를 주인공으로 한 40여 편에 이르는 동화 중의 하나다. 1930년대가 어떤 시대인가. 일제강점기로 우리나라의 수난시대가 아니던가? 이렇게 놀랍고 반짝이는 작품을 쓴 현덕 작가가 존경스럽다. 지금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으니 명작임이 틀림없지 않은가?

노마, 똘똘이, 영이는 쥐를 쫓고 닭을 쫓으며 검정 도둑고양이 흉내를 낸다. 그러니까 정말 고양이처럼 된다. 아이들은 고양이이니까, 아무 장난을 하든 어머니께 꾸중 들을 염려가 없다.

혹 어머니에게 들킨대도 고양이처럼 달아나면 그만이니까!

 

노마는 고양이처럼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선반 위에

얹힌 북어 한 마리를 물어 내옵니다. 고양이란 놈은 이런 걸

곧잘 물어 가니까요. 그리고 노마는 똘똘이, 영이와 조르르

둘러앉아서, 입으로 북북 뜯어 나눠 먹습니다.

 

고양이처럼 북어를 입으로 물고 나와서 뜯어 먹는 모습이 상상되는가. 어찌 이리 생생하게 느껴지는 걸까? ‘고양이 흉내놀이가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이걸 나중에 알고 쫓아 나온 어머니의 모습, 후다닥 고양이처럼 달아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이 글을 쓴 현덕은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덜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현덕의 동화는 교훈적인 내용을 탈피해 일상 속 아이들의 심리를 잘 그려내, 현대 어린이문학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덕의 작품은 동화집 <너하고는 안 놀아>를 비롯 <강아지>, <나비를 잡는 아버지>, <조그만 발명가> 등 여러 그림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림을 그린 이형진은 1930년대 작품을 현대화하여 지금 우리가 즐기기에도 손색없게 만들었다.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순간적인 모습을 잡아 그리는 크로키 기법으로 글의 느낌을 살렸다. 그래서 그림이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을 준다. 고양이가 되어서 아주 마음이 기뻐 활짝 웃는 모습은 어찌나 천진난만한지 계속 마음에 남는다.

어른이 되면 유치하다는 명목 아래 재미있는 걸 다 놓치고 재미없게 사는 건 아닐까? 아이들 모습을 잘 보면 배울 점이 참 많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도 오늘 고양이처럼 기어 다녀 볼 테다. ㅡ아옹아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