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식의 이제와 다시 보니…] ② 살아있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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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식의 이제와 다시 보니…] ② 살아있는 말
  • 편집부
  • 승인 2015.09.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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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살아계실 적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우리 세 식구는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아내 : 하던 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넋이 다 나갔어요.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반찬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어요.

-어머니 : 반찬은 두 가지만 하면 밥 먹는다. 이만하면 됐다.

-나 : 오늘 반찬이 참 마음에 듭니다. 아주 좋아요.

-아내 : 어머니, 전에는 반찬을 열 가지나 만들었는데, 자꾸 이렇게 줄어들어서 되겠어요?

-나 : 그렇네, 나중에는 간장 한 가지만으로 먹게 되겠네요!

-어머니 : 소금 국물하고도 밥 먹는다고 하는데, 간장 가지고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

-아내 : 우리 친정어머니 같으면, 이런 반찬 내놓으면 당장 떠나겠다고 하실 겁니다.

-어머니 : 사돈은 고기 반찬이 있어야 잡수시나?

-아내 : 아뇨, 고기 반찬은 아니더라도 가짓수가 많아야 돼요.

-나 : 이렇게 먹는 게 좋아요. 어머니도 찬성이시니 2대 1이라 앞으로 반찬은 간단히 차리도록 해요.

-아내 : 그건 반찬 만드는 사람 맘대로 하는 거니, 다수결이 소용없습니다.

-나 : 왜, <조화로운 삶>(헬렌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가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에도 그러지 않던가요? 한 가지만 먹는다고.

어머니,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좀 해 드릴게요. 미국 사람인데 100살까지 살다가 그것도 기운이 다 되었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곡기 끊고 이승 삶을 마친 사람 이야기입니다.

새로 만난 부부가 한 오십쯤 돼서부터 손수 집을 짓고 농사하며 살아가는데요, 끼니마다 음식은 사과면 사과, 감자면 감자, 한 가지를 먹었다고 합니다.

가짓수를 줄여서 적게 먹고, 부지런히 일하고, 책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으로 내며 살았는데, 병원에 한 번 안 가고 100살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어머니 : 내가 산에서 만난 노인도 80이 넘었는데, 나물 반찬에 조금만 먹는다 하네. 그런데도 그렇게 정정하더라.

-아내 : 그래도 음식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2000년 11월 27일 월요일 일기)



주고 받은 말 살려 적어놓으니, 이제까지 내 맘속에 살아있습니다. 우리 집 밥상은 이 말대로 홑집니다. 날마다 몇 줄이라도 적으며 살아가는 까닭입니다.





주중식-web


* 주중식 (농사꾼, 작가 / 전 샛별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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