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단상]조심스럽게...불만을...거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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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단상]조심스럽게...불만을...거창하게
  • 한들신문
  • 승인 2021.05.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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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농부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고 농지를 구입한 일이 온 마을에 알려졌다. 며칠 뒤에 이를 대견하게 생각하신 분이 오전 일찍 전화를 주셨다. 꼭 농지원부를 만들고 경영체 등록을 하라 일러주셨다. ‘!!! 고마워라!’ 금요일이었고 오후 2시 반에 손님이 오시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일러주신 분의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 주말이 지나기 전에 일을 처리하고 보고하리라 마음먹었다. 함께 기쁘고 싶었다. 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아직 토지 권리증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읍으로 가서 법무사 사무실에서 권리증을 찾는 일이 우선이었다. 참고로 내가 사는 진마루는 거창읍의 가장 북단이다. 법무사 사무실로 운전하는 내내 그 설렘은 봄을 부르는 바람의 싱그러움과 함께 흥분의 룰루랄라였다. 보란 듯이 권리증을 찾아서 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열 체크를 하고 연락처를 기입한 뒤에 농지원부 등록하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이런저런 문서를 발급받고 제출하고 등의 행정처리를 원활하게 도움받아 마쳤다.

그러고 나서 경영체 등록을 어찌하면 되는지 여쭈었더니 그것은 품질관리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시며 담당자께서 친절하게 포스트잇에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적어 붙여주셨다. 위치는 거창읍이었다. ‘울랄라, 우짤꼬예상치 못했던 일정이 늘어났다! 하지만, 오케이! 2시 반까지만 귀가하면 된다. 만만치 않은 거리지만 서울의 교통상황과 달라서 빠듯하지만 해볼 만하다, 가자!

농부로서 진일보하는 기쁨을 완수하기 위해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다시 거창읍을 향했다. 품질관리원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상냥한 안내종료 메시지가 흥분을 극대화시켰다. 한적한 건물의 출입문을 지나, 열 체크하고, 연락처 기입을 하고 상담자가 상담을 마치기를 숨죽이고 얌전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 용무의 내용을 말씀드렸다. 농업경영체 신청하러 왔습니다. 새싹 농부의 희망찬 태도가 좀 무색해지는 담당자의 사무적인 응대에 잠시 당황했다. 담당자는 이런저런 문서가 구비되었는지를 질문하셨다. ‘어라, 부족하다.’ 필요로 하는 문건이 상당 부분 미비한 상태였다. 내가 구비서류의 충분조건을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다고 말씀드리자 적극적으로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하셨다. 이장 확인서, 농기구 등의 구입 영수증 등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에구머니나!!! 뭐지?! 불쾌한 기분은 어느새 혈압을 높이고 뒷목의 혈관을 뻣뻣하게 했다. 참아보려 했지만 그럼에도 새어 나오는 화를 동반하여 불평을 쏟아냈다. “선생님께 화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런 문건들이 필요하다고 알려 주시지 않았을까요? 제가 오늘 웅양에서 거창읍을 두 번 왔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이 없었나요? 왜 기관끼리 이런 일을 협업하지 않나요?” 그 양반은 까닭 없이 내 불만을 고스란히 들어주셨다.

소득 없이 돌아오는 내내 울컥했다. 분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무지한 초보 농부의 첫 서글픔이었다. 씩씩거리며 돌아온 시각은 손님이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린 지 제법 지난 후였다. 더 미안한 것은 손님을 맞으면서도 나는 불쑥불쑥 내 화의 원인을 더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날 밤, 하나의 큰 원인을 거칠게 찾았다. “기관 간 행정연계의 사각지대에서 생긴 불이익이었다.

부디, 선출직 공무원이 임명직 공무원들을 강제하기 전 이런 사각지대가 자체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정보독점의 포식자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부패라는 이름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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