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이야기 16]교감하는, 교감하고 싶은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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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 이야기 16]교감하는, 교감하고 싶은 교감
  • 한들신문
  • 승인 2021.05.0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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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초 교감 신인영

두 명이 마주 보고 앉습니다. 1분 동안 한 사람은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한 명은 듣습니다. 듣는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고, 핸드폰도 만지작거리고 일부러 딴짓하며 듣습니다. ~.”

이야기 소리, 허탈한 웃음소리, 몸을 움직이는 사람도 여럿. 상대방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도 있고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시간을 재고 있는 나도 1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말하던 사람은 그대로 이야기하고, 듣는 사람은 상대방 눈을 마주 보며 집중해서 잘 들어 줍니다. 역시 1분 동안 합니다. ~.”

이야기 소리가 들리지만, 전체 분위기가 차분하고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1분 지났다고 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진지하다.

학교현장맞춤형 직무연수 감정코칭으로 평화로운 관계 만들기첫 시간에 한 실습 장면이다. 작년 12, 도교육청에서 학교별로 운영하는 직무연수 공모사업이 있었고, 난 그때 감정코칭 2급 과정을 이수하는 중이었다. 감정코칭 연수를 들을수록 교사에게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강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교직원 동의를 받아 공모사업에 신청했고, 선정되었다. 감정코칭 직무연수는 이번 1학기에 10, 매주 수요일, 12명이 같이 한다.

교사는 갖가지 감정을 가진 아이들과 일상생활을 같이 한다. 교사였을 때, 퇴근해도 내 머릿속은 퇴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 애는 마음이 어땠을까?, 내일 또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까?, 내일은 이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교감이 되고 몇 달 지났을 때, 문득 머릿속이 덜 복잡했다. 이유가 뭘까? 아이들과 맞대면하는 상황이 줄어들면서 생긴 변화였다. 머릿속 아이들과 같이 퇴근하는 심정을 알기에 선생님들의 머릿속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길 바라며 연수를 진행한다.

학교에서 아이 행복, 교사 행복, 교감인 내 행복은 엇물려 있다. 유아부터 성인까지 연령대는 물론, 하는 일에 따라 입장이 다르고, 개인 특성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윤활유, 접착제 역할을 하려고 한다. 내가 잘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면서.

점심시간, 곳곳에 아이들이 있다. 운동장 가운데서 축구하는 팀, 그네 타고, 미끄럼 타는 아이들, 쉼터에서 모래놀이하는 아이들, 흙 무더기에 오르내리는 아이, 숲놀이터에서 나무그네 타는 아이, 닭한테 모이랑 물을 주고 달걀 꺼내는 아이, 닭을 안기도 하고 쫓아다니며 노는 아이. 개미 키운다고 개미집 꾸미는 팀, 지렁이 찾느라 땅 파는 아이, 술래잡기하는 팀, 자전거 타는 아이, 친구를 지켜보는 아이...

아기 개미도 키울 거예요.”

흙도 넣어줄 거예요.”

저 이제 여기 다녀요(전학 온 아이).”

선생님, 왜 맨발로 걸어 다녀요?”

성 쌓아요.”

교감선생님, 나랑 그네 타요.”

(한 그네에 같이 타면서)“싫어요, 높이 갈 거예요.”

교감선생님, 코알라 해 봐요.”

선생님, 빨리 와요, 닭이 얼음을 잘 먹어요.”

선생님 이름은 뭐예요?”

(숨어 있다가, “~ 난 호랑이다!”하니) “깜짝 놀랐어요. 우리 오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빗소리가 좋아요.”

운동장, 숲놀이터,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면 이렇게 제각각 노는 아이들을 만난다. 무얼 하는지 물어보고, 놀이에 끼어들기도 하고, 요즘은 마음이 어떤지 묻고, 장난도 걸고, 위험해 보이는 건 치우거나 조심하라고 말하고, 남겨두고 싶은 장면은 사진 찍는다. 혼자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같이 있기도 한다. 그렇게 한 명씩 알아가고 관계를 맺는다. 그런 순간이 쌓이면서 아이와 나 사이 거리가 좁혀지는 걸 느낀다. 아이와 만나는 시간이 많을수록 내 머릿속은 환해진다. 아이와 이야기하고 아는 만큼 미지의 세계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에 일하느라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날은 아주 많이 허전하다.

지난주, 복도 수납장에서 우연히 금발 가발을 봤다. 그걸 쓰고, 아이를 만날 때마다 헬로우~”하며 외국인인 척했다.

그거 가발이죠?”

왜 가발을 썼어요?”

교감선생님 맞죠?”

검은 머리카락이 보여요.”

아이들은 나를 따라오며 한마디씩 하고, 가발을 벗기려 했다. 속아주는 건지 영어로만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조용하던 학교가 가발 때문에 떠들썩하고, 많이 웃었다.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모든 아이들과 교직원을 만나고, 가발을 벗었다. 퇴근하는 조리사님의 한 마디, “교감선생님, 오늘 이벤트 멋졌어요!”

다음 날, “교감선생님~~” 소리에 돌아보니, 복도 끝에 1학년 ○○가 있었다. 멀리서 뒷모습을 알아보고 불러주다니. 가발 효과인가 싶었다. 6학년 ◎◎한테는 너희 관심을 받고 싶어서 가발을 썼다고 했더니, 만날 때마다 전보다 더 큰 소리로 활짝 웃으며 인사하는 게 느껴진다. 교감하는 교감이고 싶다는 내 바람은 이런 순간에 현실이 된다. (20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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