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耳順)의 취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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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의 취업 2
  • 한들신문
  • 승인 2021.05.0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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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연 조합원

나이 60줄에 들어서며 전업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제법 준비를 잘해서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직장을 구했지만, 취업 2개월 만에 실업급여를 받는 신분이 되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여수 밤바다, 선상의 라이브 콘서트, 아름다운 고택과 암자들, 전설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들을 실로 오랜만에 누비고 다녔다. 언제까지 꼭 돌아와야 한다는 정함 없이 길을 나서 본 적이 예전에도 있었나? 가령 있었다 하더라도 일단 기억에는 없다. 유급휴가가 주는 평화! 오랜 기간 수고한 그대 이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암만.

시간 있을 때 자격증 하나 따두는 건 어떠냐고 친구의 제의가 들어왔다. 요즘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요양보호사’. 내 삶을 쭉 돌이켜 보면 배워서 득 되지 않은 일이 없고, 배워서 돈이 안 된 일이 없었기에 당장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럭저럭 나름대로 규칙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두세 달을 보내자 슬슬 다시 일을 시작하고픈 욕구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듯.

사실 다들 말리고 나도 말리며, “그냥 좀 쉬어봐라.”라고 얘기를 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노동 혹은 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는지. 그저 훠이훠이 노는 것은 복 받은 것이고 땀 흘려 일한다는 것은 뭔가 수준 떨어져 보이는. 그렇게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치며 살지는 않았을까? 아무튼, 나로서는 일할 사정도 나름 있는 것이고 또 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일자리 찾기를 다시 시작했다.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택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런 방면으로의 일자리는 차고 넘치는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 느긋하게 먹고 하나하나 체크해 나갔다.

빨간 날마다 노는 관공서 식당! 딱 점심 한 끼! 여기까지는 얼마나 좋아. 점심 먹는 인원이 장정 6~70. ‘! 좀 쌔한데.’

상당히 오래된, 너무너무 큰 주방. 온 데 어질러져 있는 식재료들과 조리기구들.

히야, 정리해서 일 착수하기까지 34일 걸려도 각이 안 나오겠는데.’

같이 도전해보러 간 친구는 현장 확인 후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바로 포기를 했고 난 기왕 간 거 끝까지 해보자 싶어서 면접을 보기로 했다.

어머나, 또 새로운 경험. TV서 보던 바로 그 장면.

너무 많아서 다 세어보진 못했지만 분명 10명은 더 되는 면접관들이 쭈-욱 앉아 있었다. 떡볶이 만들기 시연도 했다. 같이 면접을 본 젊은 친구가 최종 낙점되었다. 1.5의 섭섭함과 8.5의 안도감.

며칠 후, “지난번 면접 보신 분 맞죠? 다른 일자리를 소개하고 싶은데…….”

정말 신기한 일의 연속이다.

거의 밤이 다 되어서 사장님을 만났다. 중소기업이라는 데는 업무가 딱 정해질 수는 없고 거의 멀티 플레이어로 뛰어야 한다면서 사무실 업무를 보자고 하신다. 물론 현장을 알아야 사무실 일도 할 수 있기에 현장도 간간이 뛰며 컴퓨터도 좀 다루고. 말로 들어서 될 일은 아니고 그다음 날로 당장 출근해서 부딪혀 보기로 했다.

역시 그냥 또 책상물림인가? 나에겐 그게 맞나? 또 가족들도 그래, 글만 파던 사람이 육체노동이 가당키나 하냐면서 잘됐다고 부추기기도 하고. 참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야릇한 기분-.’

출근했다. ‘멀구나!’ 일단 마이너스 1

이런 일, 내가 재미있어 하나? 하면 하지 뭐.’

애매한 느낌의 일을 길게 할 수 있을까? 다시 마이너스 1

내가 전업하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과는 상관없는 일. 마이너스 1

노익장의 사장님은 지금껏 했던 일과 나이는 잊고 인생 새 막을 연다고 마음먹고 잘해 보라고 말씀하신다. 고마운 말씀이다.

그러나 생활의 활력과 약간의 경제적 여유를 목적으로 일을 찾고 있는 나에게 이 일은 맞지 않는다. 25, 혹은 2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쏟아 부은, 이 공장의 탄생부터 함께한 사람들 속에서, 즐거움으로 일할 뿐 나를 불태워 뭔가를 이룰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군청 홈페이지 구인란을 찾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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