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85)「우리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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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거창지회와 함께하는 어린이 책 여행 (85)「우리 가족입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1.05.3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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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 박은주
이혜란 지음 / 보림 / 2005. 10

 

할머니는 아빠 엄마거든~

나무와 풀들이 파릇파릇 연초록이 짙어가는 5월의 밤, 친구와 저류지를 걷는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밤공기를 데운다. 아이에게 받은 감동 편지로 5월이 눈부시게 열린다. 엄마에게 편지를 못 써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화로 건네는 친구와 나는 ‘낀 세대’ 부모다.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기대지 않는 첫 세대라고도 한다. 그래서 서러운 건지 세월 따라 늙는다는 것에 생각이 많아진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는 사연이 절절한 노래를 이야기하고 나는 이 그림책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와 따로 사셨던 할머니는 먼 시골에서 혼자 사셨다. 어느 날, 분주한 신흥반점에 할머니가 오셨다. 네 명의 가족은 한순간 멍한 상태다. 할머니의 엽기적인 이상한 행동에 손녀인 나는 할머니가 몹시 싫다. 나는 ‘왜 딱딱하지도 않은 우동도 못 먹냐, 어디서 이상한 옷을 주워 오느냐, 밥도 잘 못 드시고 뱉느냐, 오줌도 제대로 못 누느냐’며 밥도 같이 먹기 싫고 잠도 할머니랑은 자기 싫다 한다. 이날은 최악이다. 할머니가 옷장에 젓갈을 넣어 놔서 구더기가 나왔다. 참았던 분풀이었나, 남들처럼 귀여워해 주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반기라도 들 듯, 악다구니가 나온다.
 그렇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니는 치매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우리 집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자꾸 옷을 벗는다. 창피하다. 그런가 하면 아빠, 엄마가 한창 바쁠 때 학교 담 밑에 누워 자서 바쁜 아빠를 더 힘들게 한다. 아아, 이쯤 되면 우리 할머니, 치매고 뭐고 다시 시골로 갔으면 좋겠다.

 글쓴이 이혜란은 그림책 공부를 하다 숨기고 싶은 어릴 적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옛일을 기억하며 그린 그림에도 세심함이 깃들여 있다. 사람 사는 동네의 소소한 일상을 꼼꼼한 연필그림으로 담아냈다. 식구(食口: 한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의 의미로 ‘우리 가족입니다’라는 제목 밑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둥근 밥상을 배치했다. 할머니의 존재는 초반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묘사하여 소외당하는 주변인처럼 처리하였다. 정수리의 하얀 백발만이 드러난다.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갔을까? 숨 막히게 꽉 끼여 있는 삶의 무게처럼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오는 장면이 분수령이 된다. 손녀와 할머니의 행동을 왼편에 배치하고, 그것을 감내하며 받아들이는 아빠, 엄마의 모습을 오른편에 배치하여 각 편에서 어떤 심리가 나타나는지 엿볼 수 있다. 점점 상황이 급박할수록 오른쪽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한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음식을 만들며 얼룩진 옷, 고단한 삶에서 오는 무표정한 모습이지만 틈틈이 할머니를 돌보는 애틋한 모습이 아빠, 엄마에게 스며있다. 그래서 투박하고 거친 그 삶이 따뜻하다. 그 따뜻함은 그림에서도 여실히 나타나는데 자신의 존재조차도 없었던 할머니의 얼굴이 다음 대화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아빠, 할머니 다시 가라고 하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아빠 어릴 때도 따로 살았다면서요.
-그래도 안 돼. …… 엄마니까. 할머니는 아빠 엄마거든.
-그럼 아빠, 할머니도 우리 엄마처럼 아빠를 사랑했어요?

 

 사랑? 그 한 단어가 던지는 질문이 참으로 묘하다. 아빠가 할머니를 받아들이기까지 그 마음이 얼마나 단단해졌을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나 그런 치매 가족을 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얽히고설키며 살던 가족을 지탱해 준 이 매력적인 질문에 나는 이 가족이 무엇보다도 끈끈한 가족애를 나타내 주리라 믿었다. 그랬다. 가족은 커다란 대리석 욕조가 아니어도 행복하다. 커다란 고무통에서 목욕을 하면서 감추어진, 숨겨놓았던,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할머니의 얼굴이 드러난다. 그리고 왼편, 오른편으로 나뉜 분할면이 합쳐진다. 온전한 가족, 이제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나, 동생, 할머니 다섯이 되었다.


 밤하늘. 그 속에 저만한 아픔이, 수많은 사연에 마음이 애타게 속이 탄다 해도 ‘가족’ 그곳이 우리의 쉴 곳이다. 저류지에서 우리의 애틋한 5월의 삶의 이야기를 나눌 때 이 노래를 듣는다.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 선곡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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