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이 찾아가는 인터뷰]마을인생기록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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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이 찾아가는 인터뷰]마을인생기록관을 찾아서
  • 백종숙 이사장
  • 승인 2021.06.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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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백종숙

※이사장의 인터뷰는 거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하성농협 뒤 너른 주차장에 들어서면 건물 한 모서리에 “마을인생기록관”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서 하성(적화) 14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한 분의 마을분과 이야기를 듣는 5명의 자원 활동가가 만난다. 2020년 12월부터 인터뷰를 시작하여 구술자가 스무 명을 넘어서고 있다.


자원 활동가와 인터뷰 참여자에게 마을인생기록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하였다.

구술자 삶을 기억하겠다는 마을의 의지,

당신의 인생은 귀하고 귀합니다.

 한 분 한 분의 자기 이야기. 역사와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 서사에 방점을 찍는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갑이든 을이든 모두 제각각의 사연이 있고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연약하지만 진솔한... 우리는 소중하다는 메시지가 하성(적화) 인생기록관의 존재 의미입니다. 당신의 인생은 귀하고 귀하기 때문에 구술자의 삶을 기억하겠노라는 마을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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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베스트셀러보다 진지하고 진정성이 담긴 치유의 과정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되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앞에서 풀어놓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온 것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누군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자체가 위로와 지지, 치유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최소한 그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나 가족에게 용서와 화해의 장이기도 하고요. 살아온 삶 자체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워지기도 했습니다. 인생 기록 시간은 저에게도 치유의 시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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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이 살아온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시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웃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기쁨과 감동, 때로는 안타까움과 탄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너무나 뜻깊은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이 너무 좋아서 금요일이면 40분이 넘는 거리를 달려옵니다. 저는 농촌과 나이 든 어르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40대, 귀농 7년 차입니다. 인생기록관에서 어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농촌을 지켜오신 어르신들의 저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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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 잘 살아 냈어.

 내 이야기가 뭐 그리 이야기꺼리가 되나 싶었는데,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래도 잘 살아왔다 싶어지네요. 
이웃을 배려하고 내가 조금 손해 보고 사는 게 마음 편하게 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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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까?
▷인터뷰 섭외를 담당하신 분이 있으세요. 인터뷰할 분이 결정되면 기본 정보를 밴드를 올려주시고요.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에 동의서를 받구요, 인터뷰는 녹음과 촬영을 동시에 진행하며 기록해요. 인터뷰 기본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매뉴얼을 참고로 열린 인터뷰를 진행해요. 예를 들어 “살아온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이렇게 시작하면 대체로 “무슨 이야기를 할꼬...” 처음에는 이러시다가 곧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세요. 어르신들이 힘드실까 봐 1시간 30분 정도 진행하는데, 항상 시간을 넘기게 돼요. 인터뷰 후에 점심을 함께 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다음 주에 한 번 더 인터뷰를 잡기도 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분이 있지만, 참여자 모두가 자유롭게 질문하며 인터뷰를 이끌어 가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가 기억에 남나요?
▷당신의 삶보다 더 위대한 이야기는 없다. 
 이야기가 삶을 완전히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도 없고, 모든 삶이 이야기로 전환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여태까지 인터뷰한 스무 명 어르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개인의 과거 기록을 넘어 가족, 마을, 지역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연결됨을 느꼈어요. 인터뷰한 모든 분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중 몇 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삶보다 저 위대한 이야기는 없다”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하성농협의 최초 여사원 김정숙 어르신,농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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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계획은요?
▷이제는 어르신들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서 병원 신세를 지거나 돌아가시는 분이 자꾸 생겨요.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매주 쉬지 않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어요. 적화에 사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다 기록(영상과 녹음)으로 남겨 먼 훗날 ‘이곳에 오면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개인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가슴 뛰는 삶을 살아온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마을인생기록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 자긍심을 갖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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