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직책의 차이일 뿐 지위나 신분이 무슨 그리 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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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직책의 차이일 뿐 지위나 신분이 무슨 그리 대수라고
  • 한들신문
  • 승인 2021.06.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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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표영수 시인

쓰레기장

차성우

 

쓰레기장에 눈이 온다.

양주, 맥주, 소주, 막걸리…
신분의 높낮이가 다른 술상에서
각기 제값을 치른 술병들이 둘러앉아
한잔하신다.

자기들을 마셨던 이들의 애환哀歡을
안주 삼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눈은 까닭을 가리지 않고
쓰레기장을 덮는다.

쓰레기장에는 높낮이가 없다
폐기처분 된 지위가 있을 뿐이다.

버려진 이불 하나, 흩날리는 눈을 덮고
팔다리 쭉 펼치고 마음 놓고 주무신다.

포근하게 감싸주었을 사람의 꿈을 벗어나
버려지고 나서야 처음으로
혼자서 눈을 맞으며 신 나게 주무신다.

『거창문단 2013. 15호』

 

오손도손 우리가 한 자리 정답게 둘러앉아 마음을 헐어놓고 기쁨도 슬픔도 서로의 아픔도 주거니 받거니 온기를 나눌 수 있는 현실 속의 쓰레기장은 언제쯤 도래할 것인가.
 직책의 차이일 뿐 지위나 신분이 무슨 그리 대수라고 기죽이고 기죽고 도무지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기적이고 완고한 우리의 타성을 녹여내고 덮어 줄 하얀 눈은 언제쯤 내릴는지 내리기나 하려는지,
 우리 속에 담겨있는 해묵은 아집 허욕 무거운 집착들 폐기처분 않고서는 팔다리 쭉 뻗고 편한 잠을 잘 수 없다는 현대인들을 향한 경종은 아닌지,
 우리가 끌어안고 살아왔던 것 다 비우고 내려놓고 지운 후, 그 낮은 자리에 들어서야만 신나고 홀가분하게 안식을 얻고 평화와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는 천리를, 쓰레기장을 통해서 그려낸 인상 깊은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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