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후 다시 지조를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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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후 다시 지조를 논한다
  • 한들신문
  • 승인 2021.07.1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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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한국인은 예로부터 지조를 소중히 여겼다. 지조를 지키고자, 선비들은 목숨을 가볍게 보았고, 관리들은 관직을 내던졌고, 백성들은 염치를 지켰다. 사군자를 귀히 여긴 것도, 지조 없는 자를 짐승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 사헌부에는 청렴하고 지조 높은 이로 임명했으니, 사헌부는 바로 오늘날 검찰과 감사원이다. 최근 일신의 명리를 위해 관직과 지조를 한꺼번에 내던진 자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다시 지조를 논한다.

  현대사회에도 지조가 필요한가? 일찍이 시인은 그렇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반세기 전, 1960년 3월,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은 “지조론”을 써서 정치인의 변절을 꾸짖었다. 그 글은, 문체가 단아하고 내용이 풍부하고 의미가 깊으니, 아직 이보다 나은 글을 보지 못했다. 또한, 철새 정치인을 윤치호, 최린, 이광수, 최남선에 견주었으니, 준엄하기가 이를 데 없다. 시인은 말했다.
  지조란 순수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신이요, 고귀한 투쟁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지조를 본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다.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루아침에 동지를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자의 무절제와 배신은 변절의 전형이다. 지조론의 첫머리다.

  옛 학자의 바탕은 지조요, 지조의 상징은 백이ㆍ숙제였다.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굶어 죽었다는 고사다. 이 이야기는 공자에 의해 발굴되어, 사마천의 “사기” 열전 첫 장 백이전에 실렸다. 조선의 선비들은 백이전을 읽으면서 지조를 길렀다. 일례로 17세기 선비 김득신은 평생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이나 읽고, 서재의 이름을 억만재라고 지었다.
  한유는 그의 짧은 수필 “백이송”에서, 천지 만세에 홀로 우뚝 서서 지조를 굽히지 않은 사람은 오직 백이·숙제뿐이며,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난신적자의 흔적이 후세에 이어졌을 것이라고 평했다. 백이·숙제처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옳다’고 해도 홀로 목숨을 걸고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선비의 지조이다. 나아가, “장자”에 실린 허유와 소부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냇물에 귀를 씻고, 그 물을 소에게도 먹이지 않았으니, 학자의 지조란 애당초 이런 것이었다.

  정치가도 지조를 지녔다. 사대부란 선비이자 관리니, 관리 치고 지조를 배우지 않은 자가 없었다. 정치가의 지조는 명쾌했다. 불의한 정권 아래에서 벼슬하지 않으며, 비록 치세 관직에 있더라도 뜻이 어긋나면 그날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은거하는 실력자가 많았고, 출세보다 처사를 존중했다. 당대, 남명이 퇴계보다 도덕적으로 존중받은 것이 이 때문이었고, 후대 우암이 남명의 묘비를 지은 것도 이유가 있었다. 남명의 문하에서 기라성 같은 정치가가 나온 것도 남명의 지조와 무관하지 않다. 지조는 정치가의 신조였다.
  정치가가 지조를 잃는 것이 변절이니, 이보다 더 치욕적인 이름은 없다. ‘매국노’ 이완용 같은 자는 애당초 지조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말할 것도 없지만, 독립운동을 하다가 ‘천황 만세’를 외친 이광수는 ‘변절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은 자는 없다. 독재정권 아래서 아무리 출세해도 역시 하수인일 뿐이니, 하물며 청류를 배신하고 탁류로 들어가는 자를 어찌 지조 있다 하겠는가!

  지조는 지키기 어렵다. 춥고 배고프며 외롭다. 그래서 그 학자는 귀하며, 그 정치가는 드물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는 ‘양죽기’에서 대나무와 학자의 지조를 논한 후, 이렇게 결론지었다. ‘대나무는 식물일 뿐인데도 선비가 지조를 기르기 위해 심어 기르니, 지조 있는 선비는 얼마나 귀한가! 대나무는 스스로 특별하게 하지 못하나 사람이 귀하게 만들듯이, 어진 이는 스스로 특별하게 하지 못하니 등용하는 자가 그를 귀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조를 좋아했던 옛 선비가 대나무를 심었듯이, 지조 있는 유권자는 지조 있는 정치가를 뽑는다. 그를 어떻게 아는가? 말년을 보면 안다. 사람은, 아무리 교묘한 정치가라도 말년이 되면 본질을 드러낸다. 평생 대쪽이라는 별명을 얻었더라도 말년에 변절하면, 그는 지조를 팔아 사익을 도모한 자일뿐이다. 그런 자를 논에서 피 뽑듯이 제거해 버리는 것이 ‘평민의 지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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