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화탄소 마시며 농사짓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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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화탄소 마시며 농사짓는 주민들
  • 박재영 기자
  • 승인 2021.07.26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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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 배기구 위치 때문에 배출가스에 노출
노인들의 이동수단…공론화돼야
▲경운기의 배출가스는 전면에 위치한 배기구(동그라미 속)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

 

농촌에서 많이 쓰는 경운기의 배기구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아시나요? 혹시 관심 있게 보신 분 있으신가요? 저는 웅양면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고, 우리 아버지께서 경운기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경운기 짐칸에 타면 매캐한 냄새가 났고, 그 냄새가 싫어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매캐한 냄새가 바로 배출가스였고, 경운기의 배기구가 운전자보다 앞에 위치한 데다 높이도 비슷해 경운기가 움직이거나 바람이 역으로 불면 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 운전자나 동승자가 배출가스를 그대로 들이마실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경운기는 경유를 연료로 씁니다. 아시다시피 경유는 휘발유보다 배기가스가 심하게 나옵니다. 최근 나오는 디젤 자동차에 매연여과장치(DPF),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 등이 달려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저런 장치는 가격이 비싸 경운기에 달릴 일은 없습니다.
  거기다 경운기 단가가 낮다 보니 엔진도 크고 무거운 데다 효율이 떨어져 배출가스 발생을 가중시키기도 합니다.
  경유 자동차의 배출가스는 크게 일산화탄소(CO), 탄화수소(HC), 질소산화물(NOx), 매연으로 구성됩니다. 질소산화물은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며 암, 기관지염이나 폐렴, 폐수종 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일산화탄소도 무색무취의 유독가스로, 호흡 대사를 방해해 생명을 잃게 만드는 무서운 가스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경운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런 유독 물질을 그대로 들이마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람이 운전자 쪽으로 불기라도 하는 날에는 온몸에 배출가스 냄새가 배기기도 했으니까요.
  특히, 젊은 축에 끼는 농사꾼들은 경운기보다 트럭을 많이 이용합니다. 트럭의 경우 다른 자동차와 같이 배출가스가 후방으로 나가게 되어 있죠. 그러다 보니 배출가스를 마실 일이 거의 없지만, 시골의 노인들은 다릅니다. 저희 아버지도, 동네 어른들도 경운기를 이동수단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문제는 크게 이슈화 되지 못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경운기는 점차 사라져 가는 구시대의 산물로 여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시골이 아니라면 찾아보기도 어려우니 당연히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운기를 이동수단으로 삼는 어르신들의 건강이 염려돼 개선품이 있나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전혀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경운기 제조사들은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경운기를 제조하는 한 회사에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경운기 배기가스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개선품이나 대책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해당 회사의 답변은 “이 부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거나 이슈가 되지 않았다. 기계를 생산할 때는 다 검수를 받는데 그걸 통과했기 때문에 이걸 문제점으로 해서 이슈가 됐던 적은 없다. 그래서 개선품이나 개선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운기라는 농기계가 생산되고 있고, 소량이나마 팔리고 있는 만큼 빠른 대책이 필요합니다. 경운기가 팔린다는 말은 곧 그 경운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고, 적어도 수명을 다할 때까지 수년 동안은 운전을 하며 배기가스를 마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농촌진흥청 소속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인안전보건팀에도 전화를 걸었습니다. 농업인안전보건팀은 농기계 작업 등 다양한 작업환경으로부터 농업인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찾아내고 이러한 위험요소를 제거 및 억제해 노출 정도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농업인안전보건팀의 팀장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경운기의 배기가스 부분은 인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연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고민해보겠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저는 해당 팀장에게 “농촌의 젊은 층은 거의 경운기를 안 쓰지만, 노인들은 이동수단으로 쓰는 만큼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기사를 빌려 모두에게 부탁드립니다. 정책 결정권자나 행정기관은 농민들의 안전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귀촌한 청년들도 우리 이웃의 일인 만큼 관심을 갖고 공론화시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상품을 개선하는 것은 제조사의 몫입니다. 그러나 연세가 있으신 농민들이 이러한 위험을 안고서 어렵게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건 우리 이웃과, ‘관련된 기관’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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