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하루의 꽃’으로 피어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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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하루의 꽃’으로 피어난 시집
  • 한들신문
  • 승인 2021.07.2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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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원 (소설가)

[하루의 꽃]은 나의 엄마, 표영수 시인의 세 번째 시집으로, 팔순 기념 시집이기도 하다. 
  2003년 첫 번째 시집 [새는 자기 길을], 2007년 두 번째 시집 [소나기 덕분에]를 발간한 후, 새로운 시들이 모여서 또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될 무렵에,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책으로 ‘원로예술인 활동’ 지원 신청이 있었다. 작품성이나 작가에 대한 공신력이 전제됐음을 의미하는 일이니 괜찮다는 생각에 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신청을 했던 건데 덜컥 승인이 되었다. 시의 작품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굳이 ‘덜컥’이라 함은, 그 후 시집 발간을 위한 서류 절차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랏돈을 쓰는 일이라 일의 투명성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긴 하지만, 비효율적인 과정들이 많았다. 엄마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덜렁 보조금 신청을 한 장본인이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하는 과정에서 괜히 죄 없는 엄마한테 짜증을 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아름다운 시집이 [하루의 꽃]으로 피어났다.

지나온 길 / 어느 모롱이 어느 계곡이/
후미지고 트였는지 / 계곡 물 소리 / 
깊고 얕았는지 //
정상에 올라보니 / 산 넘어 산 뒷산까지도
어느 줄기 타고 흘러야 가파르고 수월한 지
가까운 산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이
잘도 보이더구나 //    -중략-
거친 길 
생의 꼭지점에 오르고서야 내다볼 수 있었구나
하늘로 트인 길도 
미리 볼 수 있었구나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을. 
    - ‘정상에 올라보니 보이더구나’ 중에서

  손주들이 할머니를 위해 깜짝쇼처럼 팔순 기념 가족 연주회를 열어주었을 때 답례로 낭송했던 시이다. 
  이 시에는 팔십여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살아온 삶의 연륜이 담겨 있다. 아직 삶의 질곡의 깊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자녀들에게 ‘거친 길 생의 꼭짓점’을 내다본 자로서의 당당함으로,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 여기저기 / 내가 탕진해버린 시간들 
해는 한날도 빠짐없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여축없이 내 어깨를 다독이며 지나갔는데.  
        - ‘후회’ 중에서

  자녀들은 엄마가 토로하는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한날도 빠짐없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야 함을 생각했다.
  평생을 자연과 함께 해 온 엄마의 시 속에는 꽃과 나무가 자라고, 하늘과 땅,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달밤에 달맞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길을 밝히고 억만 성좌가 달래강을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강가 둑을 따라 걸으며 이슬에 젖을 때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그뿐 아니라 그 땅에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남아있어, 뻐꾸기만 울면 ‘감자 캐다 말고 / 감자알 같은 삼남매 치마폭에 담아놓고 / 먼 하늘에 넋이 빠져 / 감자밭골 퍼질고 앉’(‘뻐꾹새 우는 날엔’ 중에서)아 울던,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 속의 우리 아지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달래강은 울음소리를 내며 흐른다. 강물의 흐름은 땅을 적시고 하늘의 별과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마침내 엄마의 가슴에 스며들어 시심(詩心)으로 출렁인다.

  엄마의 팔순 기념 시집 발간 소식을 들은 한 친구가 말했다.
“이십 년 후의 너의 모습이겠지?”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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