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지혜]행동 편향(Action bias)과 허정(虛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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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지혜]행동 편향(Action bias)과 허정(虛靜)
  • 한들신문
  • 승인 2021.07.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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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중국경제통상학부 교수 황효순

군주(지도자)가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을 ‘주도(主道)’라 합니다. 이는 지도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를 의미하기도 하며, 효율적인 조직 운용을 위해 취해야 할 행위 규범이기도 합니다. <한비자>의 ‘주도(主道) 편’에서 한비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태도와 행위의 가장 첫자리에 ‘가만히 있을 것(허정)’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야망과 열정을 가지고 강력하고 성공적인 지도자가 되기 위해 두 손을 움켜쥐고 두 눈을 부릅뜨며,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긴장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하나 강력한 지도자를 한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기다려 신하가 스스로 어떤 명분(名分)을 말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정하도록 한다. 마음을 비우면 실제 정황을 알 수 있고, 조용히 하면 움직이는 정체를 알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말을 하려는 자는 스스로 말하게 되고, 일을 하는 자는 그 결과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결과와 말한 명분이 일치하는가를 대조해보면 군주(지도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그 상황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분명한 잘못을 저질러 야단을 맞거나 회초리를 각오하고 있는 아이에게 가장 무섭고 두려운 대상은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부모입니다. 결국 그 무언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게 됩니다. 부모는 입을 다물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만, 어떤 행동을 취해야만 자신이 목적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무엇인가 움직이고 행동을 취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행동심리학자들은 이런 경우 순간적으로 편안한 기분을 얻는 것을 제외하고 일의 결과는 처음보다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비록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일을 하거나 행동을 취해야만 불편하고 괴로운 상황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행동 편향(Action bias)’이라고 합니다. 의욕을 가진 사람이 새로운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 전문적이고 특수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행동 편향’은 강하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대응력이 성장하고, 사회와 문화가 발전된 ‘인간의 시대’에 접어들어 서는 불확실성도, 인간관계의 다양성도 명확한 답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행동을 취해도 그것이 나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조직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조직을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는 사명을 갖고 있지만, 이를 위해 취해야 하는 행동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일들, 난감한 일들이 발생하면, 더더욱 속을 알기 힘든 인간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불안감과 초조함이 더 커져만 갑니다. 그래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조용히 생각하고 관찰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한비는 이런 지도자들에게 좀 더 강력한 어조로 충고합니다.

 “군주(지도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지혜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총명해질 수 있고, 자신이 믿고 있는 슬기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공적을 세울 수 있으며, 섣부른 용기를 버림으로써 도리어 강력해질 수 있다. …… 현명한 군주는 너무나 조용하여 그가 어느 자리에 앉아있는지 알 수 없으며, 텅 비어 있어 그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현명한 군주는 윗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며 신하들은 아래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현명한 의사는 진단을 내리기 어려운 원인 모를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아무런 처방을 내리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이란 자정능력이 있어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극복하는 경우가 많이 때문입니다. 파스칼도 ‘인간의 모든 불행은 그들이 조용히 방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무작정 움직여야 어떤 해결이 생길 것이며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또한 의욕이 앞서고 야심으로 인한 조급함이 생긴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한비의 글을 읽으면서 초조함이 생기거나 무엇인가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불안감이 생기면 한적한 골방을 찾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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