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이야기 23]지렁이와 태블릿
상태바
[작은 학교 이야기 23]지렁이와 태블릿
  • 한들신문
  • 승인 2021.08.06 15: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상초 교사 박경리

 

지난밤 소나기로 땅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운동장을 지나 현관으로 가는 중에 숲 놀이터를 보았더니 2학년 민호와 민호 동생인 유치원생 정현이, 1학년 정우가 닭장 근처 텃밭 옆에 옹기종기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민호와 정우는 내 콩(※콩과 콩깍지)이다. 우리는 이번 주 닭장 돌보는 당번이기도 하다. 점심때 닭장 돌보기를 했었는데 6월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더워져 아침 시간으로 옮겼다. 통학택시를 타고 일찍 등교하는 민호와 정우는 벌써 장화를 신고 닭장 근처에 나와 놀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실에 가방을 놓고 토시와 장갑을 끼고 닭장으로 갔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더니 오래된 야자 매트 아래 땅을 파고 있었다. 촉촉한 땅을 조금만 파도 지렁이가 많이 나왔다. 벌써 민호와 정현이 손에는 한가득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난 징그러워서 만지지도 못하겠는데 아이들은 손이 온통 흙투성이가 됐는데도 지렁이 잡기에 열심이다. 
“너희들 뭐하니?”
“닭한테 줄 거예요. 잘 먹어요.”
  한 줌 가득 모은 지렁이를 들고서 닭장으로 갔다. 문을 열고 정현이와 민호가 지렁이를 땅에 놓고 손을 털었다. 닭들이 몰려왔다. 
“와, 잘 먹네. 선생님은 닭들이 지렁이를 이렇게 잘 먹는 거 처음 알았네. 이제 우리 물도 갈아주고 모이도 주자.”
“저희가 벌써 했어요.”
  내가 오기 전에 정우와 민호가 벌써 닭장 돌보기를 끝냈단다. 부지런하기도 하지. 
“그래. 고마워. 그럼 철우 형이 나오면 선생님은 철우 형이랑 알을 꺼낼게.”
  또 다른 나의 콩, 철우가 장화를 신고 숲 놀이터로 올라오고 있었다. 
“철우야, 어서 와. 정우와 민호가 벌써 물도 주고 먹이도 줬대. 우리는 알을 꺼내자.”
  철우가 뛰어가 교무실에서 바구니를 가져왔다. 닭장 뒤쪽 알 낳는 곳 지붕을 열었더니 어제부터 조금 전까지 암탉들이 낳은 알 십여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하나 조심해서 알을 꺼내고 지붕을 닫았다. 민호와 정현이는 여전히 땅속에서 지렁이를 찾고 있고 철우와 정우는 닭장 돌보기를 끝내고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로 들어서는데 유진이가 나를 불렀다.
“선생님, 탭으로 수업에 관한 것만 보는 거 아니에요? 아침에 영진이가 게임 영상을 보고 소희도 트로트 영상을 보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나 게임 영상 아닌데. 놀이동산에 관한 거야.”
  사회 시간에 6학년과 현장 체험학습지 추천 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영진이는 그것과 관련해서 영상을 찾아보고 있는 거라고 했다. 소희는 말이 없었다. 
  디지털 교과서나 자료 검색과 같은 학습 활동에 활용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태블릿을 나누어 주었는데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태블릿으로 영상을 보곤 한다. 태블릿 사용에 대해서 아이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유진이가 문제를 제기해 주어 나는 얼른 1교시를 토의 시간으로 바꾸고 아이들과 논의 주제를 만들어서 얘기를 시작했다. 
“유진이가 문제를 제기했으니까 우리 한번 이 문제를 토의해보자. 먼저 문제를 제기한 유진이의 의견을 들어볼까?”
“탭은 수업 시간에 쓰기 위한 거니까 쉬는 시간에는 안 썼으면 좋겠어요. 쓰더라도 이어폰을 쓰고 조용히 봤으면 좋겠어요.”
  경준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보는 건 괜찮은데, 게임에 관한 거나 안 좋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거는 안 보게 해야 할 거 같아요.”
“그럼 우리 탭으로 무엇을 안 해야 할지를 생각하기보다 무엇을 해야 할까를 놓고 토의해보자.”
  토의의 방향을 정하고 아이들과 태블릿으로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을 포스트잇에 하나씩 적었다. 그림 영상 보고 배우기, 만들기, 마술, 음악, 트로트 듣기, 색종이 만들기 영상, 지식에 관한 영상, 수업 관련 활동 자료와 같은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먼저 학급 전체가 합의할 수 있는 의견을 추렸다. 그림 그리기, 색종이 접기, 만들기와 같은 활동 영상을 보는 것에 모두가 합의했다. 유튜브 추천 영상이나 유튜버가 운영하는 영상은 안 보기로 했다. 마술과 음악 영상에서 의견이 갈렸다. 
  영진이가 먼저 의견을 냈다.
“마술은 학예발표회 때 많이 하잖아요. 미리 보고 연습해 두면 좋겠어요.”
  경준이가 뒤따라 말했다.
“학예발표회가 아니라도 저는 마술을 배우고 싶어요. 쉬는 시간에 영상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해보고 싶어요.”
  유진이가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내가 전에 마술 영상을 보고 배웠는데, 마술 도구를 팔려고 영상을 만든 것도 많고 배우다가 마술 도구 때문에 다치기도 했어.”
  유진이는 마술 영상이 주로 물건을 팔기 위해서 만들어지고 그 자체로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런 위험한 영상은 안 볼 거예요. 카드로 하는 마술과 같이 우리가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영상을 보고 배우면 돼요.”
  아이들은 유진이가 걱정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제안을 내놓았다. 음악에 대해서도 트로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중음악을 듣는 것에 동의하였고 다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서 이어폰을 끼고 듣기로 했다. 서로 합의된 사항과 약속을 확인하고 토의를 마쳤다. 아이들이 토의를 통해서 정한 내용들을 학교에서 허용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있지만,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여러 문제를 스스로 생각해서 해결하고 풀어나가려는 노력을 지켜보고 또 지켜주고 싶다. (2021.6.2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