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단상]새싹 농부의 씨름 잔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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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단상]새싹 농부의 씨름 잔꾀
  • 한들신문
  • 승인 2021.08.3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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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내 이야기를 계속 읽는 분들이 계시다면 지지난 달, 새싹 농부의 씨름 한 판의 기억을 이어가시면 좋겠다. 시기적으로는 봄부터의 이야기가 여름을 지나는 시점이어서 그렇다. 
  아스파라거스를 친구와 지인의 도움으로 파종했다. 5월 초였다. 이듬해 분주할 요량으로 두둑을 넓게 만들었더니 여섯 줄의 두둑이 생겼다. 두 줄씩 나누어 간격을 60cm로 잡았다. 필레에 씨앗을 넣어 드디어 땅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염려 반, 의심 반이다. 날까? 나줄까? 정말 싹을 틔울까? 
  매일 새벽 일출 시간이 지나면 출근했다. 먼저 고사리 김매기를 하고는 아스파라거스 움이 텄으려나 여전히 걱정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관찰이다. 그 사이에 두둑 아래쪽 양 옆으로 초록의 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녀석들도 예쁘다. 자세히 보니, 명아주였다. 지팡이를 만든다 하는 한해살이풀. 5월이 다 지나도록 아스파라거스의 싹은 기색도 없다. 2주면 발아하지 않나? 아직 일 평균온도가 23도가 아닌가?...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이 말은 안 해도 매일 깊어진다. 6월이 되고도 첫 주를 넘기도록 소식이 없다. 아.... 아스파라거스도 종근으로 심을걸... 후회가 막급이다. 그렇게 거의 포기 체념 절망의 나락을 오르락내리락하던 그때, 그날도 고사리밭 풀을 매고 서운한 아스파라거스 밭을 기대 없이 쳐다보지만 실은 간절한 기대심을 갖고 살피는데...... 아아아아아아!!! 심봤다!!!! 드디어 나왔다. 10cm도 채 되지 않는 아스파라거스 싹이 보였다!! 여리여리한 자태가 생명의 신비함을 뽐내며 우쭈우쭈하게 그 거친 땅을 뚫고 솟았다. 기특하다. 대견하다. 훌륭하다. 멋지다!!!! 모두 살피니 세 녀석이 선두주자였다. 잔치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태양의 등판이 기세등등한 6월, 고사리 풀 매는 일과 아스파라거스 싹을 세어보는 일은 고됨과 환희가 중첩되어 오묘하다. 그렇게 6월을 꼬박 고사리 김매기를 해주니 어느새 고사리는 세력이 든든해져서 적이 자기 영토를 지켜낼 만큼 자랐다. 그 사이 그렇게 애를 끓게 하던 아스파라거스 밭은 애기애기하던 명아주가 어마어마하게 숲을 이루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새싹 농부의 잔꾀가 흑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저 녀석을 키워 지줏대로 쓰겠다! 
  섣부르고 무모하지만 해보고 싶었다. 아직은 땅의 양분을 아스파라거스와 나누어 섭취하겠지만 묵인하기로 했다. 선배이자 선수이신 동네 어른들은 모두들 내 밭이 걱정거리시다. ‘어여 베어라!’ 성님들의 성화가 매일 있지만 난, 새싹 농부다. 지금 실수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실수가 두려워 농사 모험은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을 끼쳐서 죄송하지만 소신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내 탓이다! 난, 주체적인 농부가 되고 싶다. 늦깎이 새싹 농부지만 경험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이것이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난주, 이장님의 확인 날인을 받아 품질관리원에 가서 농업경영체 등록을 접수했다. 실로 뿌듯했다. 내가 농부의 신분을 획득하는 행정적 과정이다. 실사를 나오신다 한다. 살짝 떨린다. 내 밭이 여느 밭 같지 않아서 내가 농부 됨의 의지가 전달되지 않을까 봐...
  이왕이면, 작물의 자태도 건강하고 품질도 훌륭하고 경작지도 보암직하도록 하고 싶은 것이 새싹 농부의 바람인데. 방아쇠 증후군, 테니스엘보 등등 관절 근육통 몸살을 수반하는 매일매일의 노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이다. 
  잠시잠시 눈을 들고 허리를 펴 봉우산을 바라본다. 이 땅을 살아낸, 이 마을을 지켜낸 선배들도 그렇게 바라보던 바로 그 산봉우리이다. 때때로 불을 올려 나라 지킴의 한 장소였다는 봉우리의 정기를 받는다.
  역사적인 자리인 셈이다. 봉우리는 좌로 수도산 등성이로 이어지는데 새벽마다 피어오르는 운무는 밭 노동에 성스러움을 더한다. 그 신비한 조화 속에서 노동이 기도임을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터의 동료들을 위해 우리 마을 주민들을 위해 또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해 가끔은 세계의 모든 인류를 위해... 거창해지는 노동의 기도는 진심이어서 아무도 모르게 스스로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아스파라거스의 발아가 늦어져서 애태우던 내내 난, 농부의 노동을 배운다. 이상하리만치 밭일에 진심이어서 나도 놀란다. 곧 있을 가을 태풍을 앞두고 새싹 농부의 다음 과제는 명아주 지줏대이다.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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