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이야기 24]맨발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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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학교 이야기 24]맨발 걷기
  • 한들신문
  • 승인 2021.08.3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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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초 교사 허선경

 

비가 오면 밖에 잘 나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 학교 사람들은 비가 오니 더 많이 나왔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맨발로 운동장을 걷고 있었다. 
“이야~ 재미있어 보인다. 나갈까?”
“맨발 걷기 할 거예요? 좋아요!”  
  동욱이와 지혜가 따라 나온다. 
“선생님, 또 우리 맨발 걷기팀만 나왔네요.” 지혜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둘은 맨발 걷기팀이다. 원래 우리 학년은 스포츠클럽 활동으로 줄넘기를 하기로 했는데 지혜와 동욱이가 발목을 다쳐 줄넘기는 무리일 것 같아 대신 걷자고 제안했다.
“선생님은 맨발로 걸을 건데 너희도 같이할래?”
  동욱이는 뭔가 새로운 것에 흥미롭게 도전해보는 스타일이라 금방 따라 했고, 지혜는 처음에는 조금 주저했다. 평소에는 바삭바삭한 모래 위를 걸었는데, 물웅덩이가 곳곳에 보이는 진흙탕 위를 어떻게 걸을까 싶었나 보다. 하지만 운동장을 반 바퀴 정도 걷더니 생각이 바뀐 듯했다.
“선생님, 오늘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뭔가 질퍽해서 싫었는데 해보니까 부드럽고 느낌이 좋아요.”
  아이들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이리로 와보세요. 여기 지나가 보세요.”
“선생님 여기도요.”
  땅 위의 상태에 따라 물이 많은 곳, 흙이 고와 부드러운 곳, 어쩌다 툭 튀어나온 큰 자갈 때문에 발이 아픈 곳, 생각 없이 걸어가다 발이 아래로 쑥 빠지는 곳, 왠지 일부러 만들어놓은 코스 마냥 즐길 거리가 가득했다. 
“선생님,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저 아이들은 하지 않을까요?”
  교실에 있는 친구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동욱이가 많이 재미있나 보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르니 그렇지. 선생님도 수업 시간에 그런 생각해. 해보면 재미있는데 왜 동욱이는 공부하기를 싫어할까? 하하.”
“아이, 선생니임~.”
  평소에는 잔소리로 여길 말도 오늘은 웃으며 받아들인다.
  수업 시간이 다 되어 중앙현관 옆에 있는 수돗가에 발을 씻으러 갔다. 먼저 와있던 4학년 아름이가 다리에 물을 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샤워호스가 빠져있어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더니 동욱이가 수도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능숙하게 호스를 조여 놓은 클립을 풀고 꽂혀 있던 호스를 뽑더니 샤워호스로 바꿔 끼운다. 
“와~ 대단하다. 너 그거 갈아 끼우는 거 어떻게 알았어? 해본 적 있어?”
“네! 예전에 해본 적 있어요.”
“이야, 선생님은 그게 고정이 되어서 못 빼는 건 줄 알았는데 네 덕분에 알게 되었네. 고마워.”
  샤워호스로 아름이 다리에 물을 쏘아주고는 자신은 받아놓은 물 대야에 발을 씻는다. 동욱이 덕분에 발을 수월하게 씻었다. 우리가 다 씻으니 동욱이는 다시 호스를 원래대로 끼워놓는다. 동욱이는 평소엔 물건을 여기저기에 널어놓아 치워라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오늘은 마지막 정리까지 완벽하다. 동욱이가 이런 면도 있었구나. 교실을 벗어나니 다른 면들이 보인다. 어쩌면 ‘이 아이는 이렇다.’라고 생각하는 건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로 교실에서 보이는 모습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 대해 확신에 찬 평가를 했던가. 오늘을 계기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주상초등학교는 작은 학교다. 하지만 학교 구석구석이 살아있어 작은 학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 선생님들께서 학교 곳곳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신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각각의 공간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한 사람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여기서 아이들은 매일 성장하고 있고 오늘은 나도 성장한 것 같다.(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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