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띄우다】자기 내면과 엄밀히 만날 수 있기를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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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띄우다】자기 내면과 엄밀히 만날 수 있기를 권하고 있다
  • 한들신문
  • 승인 2021.09.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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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편지 집배원, 표영수 시인

빛이 오는 소리

엄환섭

 

미루나무 잎사귀 배를 타고 긴 강을 따라 퍼덕퍼덕 헤엄쳐갔지
나뭇가지가 뒤집어 쓴 밤은 강물이 뒤집어 쓴 밤은 아주 단단했지
거미가 내장을 꺼내놓은 밤은 내가 아무리 매달려도 줄이 끊어지지 않았지
신이 양식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 만든 밤은 내가 옷을 편안히 벗을 수 있는 자유를 주었지
세상은 어디서 상처를 입었을까
나는 어디서 상처를 입었을까
상처를 기록한 글자 같은 이슬방울들이 편안히 잠자는 밤을 마구 뒤흔들고 있었지
착한 새벽이 밤을 밟고 멀리서 오고 있는 중이야
나는 마법에 걸려 배고픈 벌레처럼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지
이제부터 사시현상이 서서히 얇아지고 있어
망각은 꿈과 같이 얼마나 신선했던가

『2011, 봄 거창문단13호』 중에서

 

떨어진 한 잎 나무 잎사귀에 몸을 싣고 불안한 물살을 가르듯 지나온 길.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단단한 껍질 속에 갇힌 듯 어둡고 막막했던 밤길. 매달려 아무리 발버둥쳐도 쉽게 끊어지지 않던, 우리를 뒤집어씌워 헤어날 기미를 주지 않던 그 숱한 올가미들. 살아가며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곤고하고 막막한 밤길을, 그 부정적인 밤길을 엄환섭 시인은 양식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 창조한 신의 뜻에 비추어 육의 배부름보다는 마음 놓고 옷을 벗을 수 있는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로 되바꾸어 놓았다. 허울과 가식에서 탈피하여 자기 내면과 엄밀히 만날 수 있기를 권하고 있다. 우리가 입은 상처의 출처를 발견하고 새벽이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를 수습하고 치료하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밤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우리가 묻어두고 잃어버려 마땅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살아가며 우리에게 망각이 없었다면 삶은 더욱 무겁고 칙칙했을 것이다.

  새벽은 밤을 거쳐야만 올 수 있다는 철칙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켜 주는 아름다운 이 시를, 나는 우리 모두와 함께 나누어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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