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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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 한들신문
  • 승인 2021.09.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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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소비자주권행동

나의 개인사를 하나의 줄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아마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색깔을 지닌 띠같이 보일 것이다. 이는 나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특별한 경험치가 두드러져서가 아니다. 십만 제곱미터의 영역에 살았던 비슷한 시기, 모든 사람의 인생사와 동일한 특색일 뿐이다.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나 또한 낯선 선진국의 일원으로 살게 됐다. 색깔로 치면 진초록빛이라고 할까. 그것은 내게 대단히 생경하고 오글거리기까지 하다. 인생의 첫 발을 야만과 가난에서, 색깔로 표현하면 무채색의 거무튀튀한 환경에서 나서 자라 그 특질이 본성처럼 굳어진 나에게는 말이다.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서 밥을 구걸하는 사람을 보는 일도 다반사였고 육십을 넘으면 동네에서 귀한 어른 대접을 받던 그런 시절이었다. 매일 등굣길에 지나게 되는 신작로 길가 이층의 자그마한 교회의 목사가 어느 날인가 간첩으로 밝혀져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다는 강요된 이데올로기의 시대이기도 했다. 
  태어나서부터 중고등학생이던 시절까지 한 사람이 반도를 지배했고 그 통치자는 박정희였다. 그는 나의 몸도 지배했지만 정신도 결코 박정희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상상력은 언제나 박정희의 긴급조치 안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이 그렇게 불편하지도 않았다. 
  80년대가 되면 나는 연소득 천 달러에 자가용을 갖게 된다는 박정희의 선전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그가 나보다 더 큰 자유를 꿈꾸던 어떤 이의 총탄에 사망했을 때 나는 천 달러와 자가용 때문에 눈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약간의 독서와 젊은 패기는 언제나 위험하다. 상상력의 지평이 자꾸 넓어져 금단의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머릿속은 결코 누구도 지배할 수 없음을 심지어 나조차도 맘대로 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상상력이 아니라 그것이 언제나 입이나 몸을 통해 바깥으로 나오는 게 화근이었다. 자본주의는 과연 선한 제도인가? 대통령 직선제는 불가능한가? 왜 북한은 항일세력이 지배했고 남한은 친일세력이 지배했는가?  
  여우 피하니 범을 만나듯 20대 나의 통치자는 전두환이었다. 그의 폭정은 나의 시대를 붉게 칠했다. 상상력은 거세되었고 수많은 사람을 살육했다. 사상을 탄압했으며 8년간을 철권통치했다. 광주의 학살을 알고 난 후 누구나 그렇듯 온몸이 정신이 불타오른다고 느꼈다. 작지만 돌멩이를 들었고 이불속에서라도 외치며 저항했다. 전두환의 악행의 리스트는 경부선보다 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자의 생은 감옥이나 형장이 아니라 골프장이나 병원에서 안락하게 마감할 것 같은 섬뜩한 예감이 든다. 친일을 처단 못하니 결국은 후세의 거악들에게 용기를 준 탓이리라. 선진국이라니!
  조지 오웰은 20세기 그의 조국을 혐오했다. 펜으로 계급의 부조리를 저격했고 심지어는 총을 들고 카탈루냐에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싸웠다. 전체주의를 경계했던 그는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지지하지도 않았다. 사상과 몸이 일치된 진정한 지식인 조지 오웰은 그 당시 미국과 더불어 가장 강성한 대영제국을 결코 선진국이라 표현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부조리한 영국도 언론은 살아 있음을 그는 에세이를 통해 말했다. 적어도 기자나 언론사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전통은 있다고 그는 자부했다.
  국민소득 4만 5천 달러에 세계 10대 경제 부국의 낯선 지표에 떠밀려 우리는 선진국이라는 부표 위에 서 있다. 기분은 좋다. 국민이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낼 정도니 독재 국가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이 사실을 왜곡해 정파의 이익을 취하고 검찰이 언론과 결탁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국가가 언필칭 선진국일 수는 없다. 아무리 토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지만 제대로 정치, 사회, 문화의 상부 구조가 구축되지 않으면 토대 구조는 사상누각처럼 무너진다는 걸 역사의 경험에서 배운다. 아르헨티나가 그러했고 필리핀 또한 우리보다 더 부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의 타락은 기반을 흔들었고 일부의 부자를 빼고 그들은 빈곤한 국가가 되었다. 부패한 정치는 언제나 부패한 언론을 전제한다.  
  정적을 유죄로 몰아 구속하고 탄압했다. 심지어 전직 국무총리도 법무부 장관도 그 칼을 피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가 아니라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민주주의 외피를 쓰고 있으니 방법은 오직 한 가지다. 언론과 결탁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법으로 단죄하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선진국은 그냥 봄날같이 한 순간 사라질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의 발아래 두어야 한다. 뭔가가 꿈틀거려 국민을 이기려 한다면 누군가는 잠들지 않고 그 뭔가를 추적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 누군가가 언론이고 그래서 언론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 인생의 스펙트럼에 황금빛을 입히는 가장 기초 작업은 언론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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