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단상]나, 여기서 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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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단상]나, 여기서 죽나?
  • 한들신문
  • 승인 2021.10.0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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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엄마가 쓰러지셨다. 난, 꽤 먼 곳에 있었고 아들들이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모셨다. 이대목동병원. 뇌출혈. 이후 오른쪽 팔과 다리가 회복되지 않아서 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 후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난, 엄마의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쓸만한  것들은 나누고, 29개 보따리를 아들들과 함께 온 동네 재활용 수거함에 넣거나 올려두었다. 한 달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이후, 엄마는 내내 요양원이 현 주소지다.
  앞서 시어머니의 소천과 친정아버지 돌아가심을 고스란히 함께한 내 이력은 이제 세 번째, 엄마의 마지막 삶에 보호자로 있다. 아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울 남편의 그날까지 내가 밀착 도우미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나면 내 차례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일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로의 여정이다. 
  이 마을로 이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평생 이곳에서 살아내신 분의 주검이 묻혔고, 내 나이 즈음의 한 분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이어 그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문득, “내가 생의 마감을 할 그곳은 어디일까?” 질문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은퇴하고 인연 닿는 대로 정착하겠다만, 집중했던 이곳이 내 생을 마감하는 곳이라는 묵직한 인연이 있다는 것이 질문 끝에 얻은 답이었다.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이 마을에서 생의 마지막 가장 유의미한 매일매일을 만들어 보는 것이 현재 나의 현안이다. 힘은 없고 경제력도 부족한 ‘실버시대’의 웰빙과 웰다잉을 위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 마을이 내가 살기에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곳이어야 한다. 의식주, 지정의와 지덕체, 희로애락과 안빈낙도 그리고 자연친화와 삶의 열정이 공존 융합된 웰빙 웰다잉의 마을!!
  살펴보니, 보건소는 2분 거리, 유사시 119는 20분 안에 도착 그리고 거창읍, 구미, 대구로 연결된 전문 의료기관은 완벽에 가깝다. 게다가 세계 제일의 의료보험이 운영되는 대한민국의 건강보험공단이 일상의 의료복지는 책임지고 있다.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좋은 해와 바람이 있고 흙이 있어서 매일 작물을 돌보는 농부로 살아 육체의 게으름을 피할 수 있으니 더더욱 안심이다. 건강에 대한 염려를 미리 하는 것은 욕심일 정도다. 걸치고 사는 옷은 이미 차고 넘친다. 내가 산 것은 몇 없지만 아마 옷을 더 살 일은 없어 보인다. 먹거리도 차고 넘친다. 내가 일부, 주변에서 일부 그리고 멀리서 일부 조달하니 모자랄 턱이 없다. 공산품은 2분 거리에 하나로마트와 고향마트에 즐비하다. 집은 이미 지어져 있으니 매년 재산세만 내면 그것도 오케이다. 집에 현금을 두지 않아도 되는 농협은행과 현금인출기도 2분 거리. 아 또 있다. 주유소도 2분. 그러나 살면서 ‘사람살이’에 필요한 몇 가지를 발견했다.
  시설물과 기구들의 고장수리를 할 수 있는 마을 영선팀이 있으면 좋겠다. 가끔 세탁차가 오는 듯하지만 수시로 사용할 수 있는 코인 세탁소가 있으면 좋겠다. 혹시 가능하다면 미장원도 하나 있으면 어떨까?... 도심형 식당도 있으면 생일 축하, 가족모임, 지인들끼리 이벤트도 해보고 싶다. 도시락 배달이 가능하면 더더욱 좋고! 아참, 중고가게도 있으면 좋겠다. 나는 필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물품들을 저렴하게 사고파는 곳 말이다. 아, 미화팀도 필요하다. 청결을 위해 청소와 풀베기 조경까지 실비로 부탁할 수 있는 용역팀도 있으면 좋겠다. 이런 소상공인들이 3번 국도 길가에 자영업을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다음은 ‘문화살기’인데 산자락을 이용한 조각공원 하나쯤 있어주고 거기서 공연, 음악회를 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을뿐 아니라 통칭 하성(적화) 권역의 마을들은 “웰빙 웰다잉의 실버타운”이 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그 흐뭇한 일을 상상하는 동안 기회가 생겼다. 내가 이 마을로 인연이 닿도록 징검다리 돌을 놓아주신 낙향인 두 가정과 함께 소위 북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이름도 정했다. “봉우산책방” 작은 티룸이다. 책을 진열하고 지역신문과 지역홍보물을 모아 두려 한다. 소소한 중고물품들을 사고팔 수 있도록 활용할 참이다. 잘 되면 소상공인 등록도 해보고 싶다. 
  지난달, 92세 되신 엄마가 내게 물어보셨다. “내가 여기서(요양원) 죽나?” 엄마는 내가 요양원 신세를 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발적인 삶을 살다가 호흡이 멈추기를 바라서 “웰빙 웰다잉 마을”을 꿈꾸는 일에 당신이 반면교사였음을 아시는 듯 물어보셨다. 턱 막히는 숨과 울컥한 울음을 숨긴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죄송했다. “엄마 미안해요. 나는 끝날까지 적극적으로 자발적인 호흡으로 살다 가려구요....”
  첨언/지면을 빌어, 이 작은 실천의 기회를 열어주신 하성(적화) 마을의 노인회 어른들과 역사기록관 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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