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치와 고결한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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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치와 고결한 인격
  • 한들신문
  • 승인 2021.10.0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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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용균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에는 국격이 있다. 인격이 높은 사람이 존경받듯이 국격이 높은 나라가 존중받는다. 스위스가 국제사회에서 대접받는 것은 직접 민주 정치를 구가하기 때문이요, 북유럽이 주목받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의 높은 수준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진 것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에서 민주정치는 다른 분야, 즉 경제, 사회, 문화 발전의 초석이다. 고결한 인격이 높은 국격을 만든다.

  왜 하필 민주주의인가, 역사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 자유의 확대 과정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1인만 자유로웠다. 고대 군주제였다. 그러다가 소수가 자유를 얻었다. 중세 봉건제도였다. 마침내 시민혁명으로 민중이 자유를 얻었다. 근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정치제도다. 부침은 있었으나 예외는 없었다.

  군주제 시대에도 이상이 있었다. 예컨대 ‘왕도정치’ 같은 것이다. 중국 요임금 때, 한 번은 왕이 민정을 살펴보다가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은 그가 왕인 줄 몰랐다.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며, 우물 파 물 마시고 밭 갈아 밥 먹으니, 임금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말을 듣고 요임금이 “이제 되었다.”라며 만족했다고 하니, 이른바 ‘함포고복’(含哺鼓腹)의 고사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이었을 뿐, 실제 이러한 정치는 없었다.

  일인 독재든, 일당 독재든, 독재로는 만인의 행복을 이룰 수 없다. 조선 시대 세종과 같은 왕이 있었으나 당대에 그쳤다. 프롤레타리아트 일당 독재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던 소련 공산주의도 스탈린의 폭정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민주정치의 기원이 되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영웅 페리클레스의 일인 민주정치도 그가 죽자 중우정치로 변했고, 마침내 몰락하였다.

  민주정치는 까탈스럽다. 말이 많아 시끄럽고, 결정이 더디고, 비용이 많이 든다. 오죽하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철인 정치를 주장했을까. 게다가 무너지기도 쉽다. 당대 최고의 민주헌법을 자랑했던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민주적 선거’에 의해서 히틀러의 나치즘에 무너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거니와 아직도 남미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또한 4월 혁명이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무너졌고, 6월 항쟁이 노태우의 기만 정치에 무너졌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민주정치의 주역은 정당이다. 일찍이 정치학자 최창집은 정당을 민주정치의 기반으로 보고, 분단과 독재에 기인한 한국 정당의 취약한 구조를 지적한 바 있다. 민주적인 정당제도, 선거제도를 갖추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정치가 저급한 까닭이다. 정당을 변화시킬 방법이 없을까?

  영국의 역사적 경험이 있다. 영국의 정당은, 일찍이 왕당파와 의회파로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민의의 대변이라고 할 것이 없었으나, 곧 보수당과 자유당으로 바뀌면서 정책 정당이 되었고, 자유당이 노동당으로 교체되면서 비로소 보수-노동 양당체제가 확립되었다. 이 변화를 끌어낸 것은 노동자였다. 노동조합의 투쟁적인 파업, 적극적인 정치참여, 조직적인 투표가 정당을 변화시켰다. 그리하여 19세기 보수당의 디즈레일리와 노동당의 글래드스턴이 번갈아 수상으로 개혁을 이끌어 1세기 동안 ‘대영제국’ 시대를 창조했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노동자의 파업과 시위, 심지어 과격한 시위까지도 용인한다. 왜냐하면, 민중의 단결된 힘이 아니고는 권력의 부패와 야합을 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노동자의 파업을 지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저항하는 민중조직과 지지하는 시민, 그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이다. 반면, 한국은, 노동자의 파업을 비난하는 언론과 불평하는 시민을 보면, 아직 요원하다 싶다.

  몇 년 전,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님께 명함을 받은 적이 있다. 명함의 뒷면에는 그분이 후원하는 단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여섯 단체였다. 정당도 아니요, 친목회도 아니요, 봉사단체도 아니었다. 모두 시민운동 단체였다. 역사학자의 혜안이 보였다. 그것이 민도를 높이는 지름길이었다. 민중을 지원하는 함성이자, 정당을 추동하는 힘이었다. ‘행동하는 양심’이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었다. 1%면 족하다. 자기 수입의 1%를 시민운동 단체에 기부하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으니, 그들이 곧 현대 민주주의 시대의 ‘고결한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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