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이야기 27]수리수리마수리 변해라 얏
상태바
[작은 학교 이야기 27]수리수리마수리 변해라 얏
  • 한들신문
  • 승인 2021.10.19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상초 돌봄전담사 이수연

 

 

“수리수리마수리 변해라 얏!”
  주문과 함께 공간이동이 시작된다. 사각의 교실에서 자칭 ‘보물다락방’으로 이동해 가는 것이다. ‘공간이동’ 놀이는 내가 즐겨하는 놀이기법이다. 먼저 사물이나 책 따위로 아이들의 눈길을 모은다. 눈길이 한데 모아졌다 싶으면 때를 놓치지 않고 주문을 외며 마음을 이동시켜간다. 아이들은 새로운 공간 속에서 뭔지 모를 자신만의 보물을 발견해 가며 노는 것이다. 

‘오늘은 어디로 공간이동해 볼거나?’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뜬다. 교실을 둘러보다가 문득 화보집이 눈에 들어온다. 크고 무거워서 구석자리로 밀려난 책이다. 나는 휙휙 들쳐보다가 칸딘스키를 고른다. 칸딘스키의 구성 작품은 색채가 선명하고 천진난만하여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좋다. 그는 세계를 점, 선, 면으로 단순화하여 구성하였다. 이 세 가지를 나누고 합하고 쪼개고 분할하여 충돌시킨다. 충돌은 긴장을 만들어 내고 리듬을 그리며 생명력을 표현한다. 
  나는 무심한 척 아이들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에 들어온 아이들은 금세 호기심을 드러낸다. 

“어? 이게 뭐지?”

  책장을 넘겨본다. ‘동심원이 있는 정사각형’ 그림이 나온다.

“어! 달팽이집 같다.”
“달걀 같아. 이 안에 작은 동그라미는 병아리야.”
“입 같은데? 맛있는 것 먹는다고 벌려서 자랑하고 있어.”

  아이들은 제각기 제 마음으로 그림을 본다. 책장을 다시 넘긴다. ‘원 주위에 그림’이라는 구성이 펼쳐진다.

“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우주선들 같아.”
“이거 우주 배다! 우주 배에서 음악소리가 나오는 것 같은데”
“이거 체스판이다. 블랙홀에서 체스하면 우와아!”

  주문을 외울 틈도 없이 ‘보물다락방’으로 순식간에 이동해 간다. 칸딘스키가 데려다준 보물다락방은 모서리가 사라지고 바닥과 천장의 구분이 없는 굴절된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보이는 대로 보이고, 보고 싶은 대로 보여 준다. 아무렇게나 풀어 던진 끈, 힘껏 차 올렸더니 공중에서 멈춘 까만 공, 몰래 구부러뜨린 철사, 낮달처럼 하늘에 걸려있는 닻, 내 자전거 바퀴가 지나온 자국……. 아이들은 다락방에서 보물을 찾기 시작한다. 
“이 그림들은 러시아의 바실리 칸딘스키라는 화가가 그렸어요. 칸딘스키는 색깔과 모양에도 음악이 흐르고 감정이 있다고 생각했대요. 우리도 칸딘스키의 마음이 되어 그림으로 표현해 볼까요?” 
“네, 좋아요.”

  아이들은 곧 진지해진다. 부지런히 연필을 움직이는 아이들의 손끝이 대범하면서도 섬세하다. 
  용수는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아니 한 편의 시를 완성했다.
  ‘노래하는 바다’, ‘음악을 좋아하는 냉장고’, ‘춤추는 나무’, ‘안테나를 달고 가는 배’, ‘피리를 불면서 춤추는 토끼’, ‘자연의 풍경’.

  민아의 대담한 상상력은 칸딘스키를 간단히 넘어서고 있다. 색의 충돌과 어울림을 한껏 즐기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신나는 음악’, ‘반짝반짝 우주’, ‘태양이 지고 있는 산’, ‘밤에 있는 무지개’.

  보물다락방을 다녀온 아이들은 그새 훌쩍 자란 것 같다. 눈은 빛나고 표정은 침착하다. 서로의 그림을 감상하는 어깨가 으쓱하다. 자신이 발견한 보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신호다. 신호를 감지한 나의 눈은 다시 게슴츠레해진다. 

‘다음에는 어느 공간으로 이동해 볼거나?’ (2021.9.2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