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은 공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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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은 공정한가?
  • 한들신문
  • 승인 2021.10.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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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국민학교 시절) 하굣길 노점 연탄 화덕 앞에는 동네 아이들이 쪼그려 둘러앉아 뽑기를 하곤 했다. 나무 좌판 위 국자로 설탕을 녹이다가 나무젓가락으로 소다를 콕 찍어 넣으면 노랗게 부풀어 오르고 그걸 스테인리스 판에 톡 털고 쇠로 된 갖가지 모양을 찍은 후 좀 식힌 후, 안 부서지게 뽑는 것이다. 잘 뽑으면 설탕으로 만든 노란 반투명의 큰 잉어나 비행기를 경품으로 준다고 했지만 실제 성공해서 받아본 기억은 없다.
  그 때의 뽑기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달고나’로 나오는데, 내가 자란 동네에서는 그것을 ‘설탕 뽑기’라 불렀다. 뽑기에 성공하는 관건은 바늘을 불에 달구는 것도, 뽑기 뒤편에 침을 바르는 것도 아니다. 바로 주인아저씨가 설탕물 위에 모양틀을 찍을 때 힘을 많이 주는가, 살짝 찍는가에 달렸다. 이게 어디 공정하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이 정도는 뽑기를 엄청 많이 해 본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다. 뽑기의 공정함은 주인아저씨 손목에 달렸거나, 그날 손님의 숫자에 달렸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전 세계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오징어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건 이야기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문화는 시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이 드라마가 대중의 찬사와 지지를 얻는 이유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처지가 시청자들에게 깊은 동질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의 절망을 먹이로 삼는 것에 대한 유대감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가 설계한 게임의 법칙과 적자생존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징어게임’이 던져 주는 우리 사회의 화두는 코로나19 이후 부쩍 늘어난 경쟁과 불안과 그리고 극명한 사회 양극화이다. 드라마 속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게임의 룰이 공정함을 누누이 강조한다. 하지만 드라마도 현실도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앞서 어릴 적 ‘설탕 뽑기’에서 공정하지 못했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도 공정함은 없었다. 게임의 진행자들은 게임에 참가한 오일남을 보호했고, 참자자 중 의사 병기는 진행자들로부터 힌트를 받는다. 여자와 노인은 배척당한다.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에서 과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살아남는다. 가장 중요한 정보와 기회의 불균형이 존재한다.

  승자독식의 지독한 경쟁 체제 속 인간 본성을 그대로 파헤친 드라마는 이윽고 죽음을 앞둔 사내의 주변인들 자화상을 담아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데자뷰된다. 

  오징어는 빛의 자극에 반응하여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주광성이기 때문에 밝은 빛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456억 원의 상금이라는 휘황찬란한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오징어게임’ 속 일그러진 군상들의 면면은 때로는 극악무도하고 때로는 (돈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더없이 인간적이다. 드라마의 제목에 왜 ‘오징어’를 차용했는지 나름대로 이해해 본다. 그러나 인간은 헛된 욕망의 불빛을 향해 달려들어 끝내 오징어배에 오르는 오징어가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린 서로에게 생존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에서 누군가는 상대방을 방패 삼아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상대방의 등을 떠밀어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상대방을 배신해서 살아남았다. 한편, 또 다른 누군가는 상대방과 협력해서 살아남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은 쌍용자동차 사태를 참고로 누구나 바닥에 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때문에 너무 힘들어 경제적 모순과 구조적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겪는 문제가 아닐까 하며 그래서 '오징어게임'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세계적으로 겪는 문제다 보니 작품에서 표현한 요인들이 세계적인 인기까지 모은 것 같다고 했다. 오징어게임에 참가한 456명은 빚과 가난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456억 원의 상금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에 뛰어들어 탈락이 곧 죽음이란 사실에 기겁하고 게임을 포기하다가도 결국 게임 안, 밖 모두 지옥이라 여기고 다시 게임에 돌입한다. 현실의 절박한 처지를 노동자, 탈북민,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캐릭터로 드러내며 자본주의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생존 서바이벌을 어린 시절 동심으로 뛰놀았던 '진짜 운동장'에서의 게임으로 펼쳐놓았다. 
  그렇다면 ‘오징어게임’은 과연 공정했을까? 그렇지 않다. 게임 속에는 온갖 반칙과 속임수가 난무한다. 더 큰 문제는 불공정한 게임 세팅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즌2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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