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건너 학교 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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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건너 학교 가는 아이들
  • 박재영 기자
  • 승인 2021.11.02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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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 위반해 다른 학교로…
과밀학급에 교육환경 저해 우려
‘교육 고민 없다면 근절 안 돼’
▲25일 오전 8시, 초등학생들이 다리를 건너 등교하고 있다.
▲25일 오전 8시, 초등학생들이 다리를 건너 등교하고 있다.

 

25일 오전 8시가 갓 지난 이른 시간, 제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거창 내 한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향하는 어린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냥 보면 별 이상한 상황이 아니지만, 사실 하나의 문제가 숨어 있다. ‘다리를 건너 학교를 가면 안 된다.’
  샛별초등학교 학생을 제외한 거창 내 모든 초등학생들은 거주지가 학구에 속한 학교에 가야 한다. 거주지가 거창초등학구에 속하면 거창초등학교를 가야 하고, 창동초등학구에 속하면 창동초등학교에 가야 한다. 학구를 넘어 이사를 가게 된다면 전학을 가는 게 원칙이다.
  해당 다리의 남쪽은 창남초등학구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가는 학생들은 다른 초등학교로 등교하는 학생들로, 엄연히 학구를 위반한 경우다.

학구 위반은 ‘불법’
  학구는 실거주지와 일치해야 한다. 실제 거주지를 속이면서 다른 학구로 다니면 안 된다. 이는 주민등록법 위반이다.
  주민등록법 제37조(벌칙)를 보면,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에 관하여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한 사람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학구 위반에 대한 학교의 의무도 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는 서류상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를 경우 학교는 행정기관 등에 즉시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은 이 같은 조치가 어렵다고 전했다.
  거창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전입신고부터 해당 주소에서 살고 있는지 확인이 되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부분이 있고, 이사를 가더라도 전학을 가라고 하기가 어렵다.”라며 “강제 처분을 하려고 해도 그 학교를 오래 다니고 있다 보니 학습권 침해 우려도 있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거창군 관계자도 “사실조사에 나서도 거주지에 직접 들어가 보지 못해 ‘살고 있다’는 말을 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왜 학구를 위반할까?
  거창군과 거창교육지원청, 학부모들은 공통적으로 학구를 위반하는 배경에 ‘교육적 목표’가 있다고 설명했다. 거창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부모들의 편의상 학원시설이 있으면 학생들이 곧바로 이동할 수 있어 선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거창 내 한 초등학교 교장도 “특히 맞벌이 학부모들은 돌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학교를 마친 뒤 돌봄을 받을 곳이 있는 곳으로 아이들을 보내고 싶어 해 학구를 위반하는 경우가 있다.”라고 전했다.
  창남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낸다는 한 학부모도 “방과 후 피아노 학원에 보냈었는데, 학원과 거리가 멀어 자연스럽게 보내지 않게 됐다.”라며 “주변에 아동센터도 없어 불편한 점도 있다.”라고 말했다.
  ‘집과 가까운 학교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거창군 관계자는 “코아루 아파트에서 보면 창남초등학교보다 창동초등학교를 보내는 게 학교와 가까워 학구를 위반한 사례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학구 위반 부작용 있지만 고민하는 곳은 없어
  교육계는 ‘과밀 학급’으로 인해 교육 여건이 나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계에서는 교사 1인당 학생 수와 학급당 학생 수는 낮을수록 교육 여건이 좋은 것으로 본다. 한 교사가 맡는 학생 수가 적으면 교육에 쏟을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나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을수록 학생들의 수업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OECD 교육지표 2021’을 보면, 학급당 학생 수는 OECD 평균 21.1명이다. 그러나 과밀학교인 아림초등학교는 학급 당 학생 수가 24.8명, 창동초등학교는 24.2명이다. 과소 학교인 거창초등학교는 19.5명이다.(거창교육지원청 누리집, 초등학교 2021. 9. 1. 기준) 
  또, 학생 수가 많아지자 특별 교실을 줄여 학급으로 편성한 경우도 있어 교육 여건이 나빠지기도 했다.
  과밀학급이 아파트의 밀집 등 해당 학구의 인구수 때문에 결정되는 것이라면 학구조정을 통해 이를 해소할 수 있지만, 위장전입으로 인한 것이라면 지역사회의 고민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고민을 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없다.
  특히, 학부모들이 위장전입을 불사하고 학구를 옮겨가는 이유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이를 해소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거창 내 교사 ㄱ씨는 “교육시설의 편차로 인해 특정 학교로의 쏠림이 심각하다는 것은 결국 쏠림만 해결하면 된다는 뜻인데, 지금까지 교육계와 행정, 시민단체 모두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치하고만 있었다.”라면서 “강북 지역에 집중된 교육 공공시설을 분산시켜 다양한 학군의 학생들, 혹은 지금까지 소외받았던 지역 시민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다면 반드시 불균형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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