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단상]입주도우미를 자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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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단상]입주도우미를 자청하다
  • 한들신문
  • 승인 2021.11.3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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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인 정애주

큰 아들네가 둘째를 본다 했다! 해산 월이 마침 동절기다. 나는 중대 결심을 일찌감치 했다. 저들만 허락하면 며느리의 산후 3개월을 입주도우미로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 제안은 순조롭게 통과되어 생각보다 일찍 저들 사는 곳에 입주했다. 나의 임무는 큰 손주를 전담하는 일이고, 둘째 아이를 출산한 저 처의 보호자인 아들을 돕는 일이고 밤낮이 바뀐 100일간의 신생아를 먹고 자고 입히는 산모의 일상 회복을 위한 주변을 감당하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나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분명히 했다. 사람이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후유증이 클 것임에 3개월 뒤, 아들네가 순조롭게 생활의 변환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흥분과 함께 예측되는 염려를 헤아려 보았다. 
  큰 손주가 나를 환영할까? 이제 두 돌이 된 아가가 엄마의 절대 도움 대상인 ‘한 사람’이 불쑥 생기는 것에 대한 충격은 얼마나 될까? ‘동생’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까? 세 사람에서 네 사람이 되는 이 상황을 3개월이면 적응하려나? 에고의 결정체인 자신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순화될까? 독점적 위치에서 누리던 삶을 양보하고 공생하는 사회적 인간됨의 첫 수업을 어떻게 가르칠까? 등등등. 한 인생을 살기로 한 내 여자의 동반자이고 새로운 두 사람의 인생의 최종 보호자가 된 아들이 체감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얼마나 가중되었을까? 사랑하는 일은 의무와 책임이 모두이고 이를 실천하면서 비로소 그 실제에 접근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30대 중후반의 삶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가족 각각의 에고를 아우르는 일은 자신의 에고를 부인하는 일임을 알아가는 나의 아들은 이 삶에 기꺼이 순응하고 있을까? 아니, 가족의 에고가 기뻐함을 보고 그 기쁨으로 자기의 행복으로 삼는 어른이 되어갈 수 있겠나? 힘들수록, 힘들어서 ‘가족의 보호자’ 되어감에 뿌듯한 자긍심의 부피는 얼마나 될까? 소녀가 엄마가 되고 온 몸으로 생명을 품어 그 생명이 자유를 찾아 엄마의 몸에서 독립하는 첫 관문인 출생부터 엄마의 맘으로부터 이탈해가는 성장 성숙의 모든 과정이 애미와 이별과 결별임을 알아갈 며느리의 기쁨과 슬픔은 이후 얼마나 깊고 클까? 둘째 아이를 만나는 일은 첫째와의 절대적이고 유일했던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것에 대한 미련의 감정선은 어디쯤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그 진한 슬픔을 극복하고 더 큰, 보이지 않는 사랑의 관계로 진보해야 하는 순애보임을 예감하고 있을까? 사람의 에고는 저 혼자 행복할 수 없고 타인의 에고를 저와 동일하게 대접해야 비로소 참 행복을 맞보게 됨을 부부가 되어 배우고 자식을 통해 확장됨을 알고 있을까? 이로써 생육과 번성의 임무가 세대를 걸쳐 전수할 사명이고 인생의 소명임을 언제쯤 인정할 수 있을까? 해산의 고통을 아는 여인이여!!!
  아들의 입주도우미를 자청하며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우주적인 염려들이 내게 혼재했다. 그리고 매일 그 전쟁을 내 속에서 치르고 있다. 감사한 것은 남편이 이를 적극 지원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며 돕고 함께 하고 있음이다. 든든한 외조다! 석 주가 지났다. 주말, 아들에게 나의 전담 대상자인 손주와 그의 아버지인 나의 아들,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잠깐 나의 일상으로 귀환했다. 돌아와 보니... 이그이그... 열 가지, 스므 가지의 이상의 일들이 산적하다. 그중 가장 우선적인 일만 처리하고 다시 3개월간의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다. 다음 주, 산모가 산후조리원에서 퇴소하고 드디어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네 식구가 한 가족 됨을 만들어 가고 만들어지는 그 현장에 증인으로 있을 수 있는 할머니의 자리가 눈물 나게 고맙다. 영광이다! 내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기가 막힌 선물이다. 무엇이 들어있을지 포장을 풀어보는 이 즐거움에 여전히 흥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빼꼼히 열고 나를 찾아와 주는 손주의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저를 온 맘으로 반기는 할머니를 기대하는 그 상기된 표정이 흡사 나의 지금의 흥분과 버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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