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운동을 일으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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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을 일으키자
  • 한들신문
  • 승인 2021.11.3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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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평화연구소 전기호

뉴스를 듣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화로워지는 뉴스보다는 기가 막히고 가슴 아픈 뉴스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저널리즘’에 ‘평화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할 수 있는 한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 가는 뉴스들을 만들어가자’는 전문용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전쟁 저널리즘’이라는 말도 있겠다 싶다. 다툼과 갈등, 심지어 전쟁을 부추기는 저널리즘이라는 말일 것이다. 모 신문이나 모 방송국의 뉴스를 보다 보면 정말 의도적으로 분열과 다툼, 심지어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본주의에서 뉴스조차 상품화되어 선정적이 되어가는 언론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결국은 시민들의 수준이 언론의 수준을 만들어 가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대다수라면 언론이 ‘전쟁 저널리즘’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美中) 간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어가고, 남북의 분단과 한반도 비핵화의 문제 해결도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언제 어디서 다툼과 전쟁이 일어날지 불안함이 늘 허공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국내적·국제적인 평화만 평화가 아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이웃이 존재한다. 남녀 간 애정문제가 살인으로 막을 내리기도 한다. 피를 나눈 부모 형제들이 원수처럼 되기도 한다.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고, 모든 나라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평화롭게 지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 사람 사회뿐만이 아니라 기후위기 등 환경문제로 인해 생태계의 평화가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탐욕스러운 사람종만 사라지면 지구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극단적 이야기도 있다.

 21세기가 가장 진보되고 진화된 세상이라고 하지만, 한편 가장 평화공존이 무너지는 위기의 세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미국의 ‘퓨리서치 센터’에서 ‘선진국의 다양성과 분열’이라는 제목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우리나라와 미국이 가장 갈등이 심한 나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한겨레신문 참조). 정치적으로 양분되어 서로 갈등하는 정도가 가장 높은 것은 물론이고, 종교, 인종, 지역적인 면에서도 우리나라가 미국과 버금가는 가장 높은 갈등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처럼 흑백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럽처럼 난민, 이민자 문제로 골치 아픈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사회적 갈등이 심한 것인지 모르겠다. 기사를 쓴 기자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갈등이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치적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책임을 말하자면 끝도 한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정치책임으로 몰아갈 수도 없고, 정치적으로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흔히 하는 말로 나부터 먼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지 않고 남을 판단하며 원망해본들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지겠는가. 

  함석헌은 1972년 <씨알의 소리>에서 ‘평화운동을 일으키자’는 글 가운데 “평화운동에 나서는 사람은 먼저 그것이 철두철미 정신운동인 것을 알아야 한다.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은 겉에 나타난 제도나 조직을 변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평화운동은 속마음에 관계된 것이다. 마음에 관계된 것이기에 가능, 불가능의 제약이 없지만 또 성패의 가름도 없다. 결과에 상관하지 않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신념 없이는 될 수 없다. 신념은 무조건 긍정하는 태도다. 민중을 믿어야 한다. 민중을 아니 믿으면서 하늘을 어떻게 믿으며 도리를, 과학을 어찌 믿겠는가. 생명의 씨알이요 역사의 씨알인 민중을 무조건 믿지 못하면 종교도 도덕도 과학도 다 거짓말이 되고 만다. 정치야 말로 믿음으로 해야 할 것인데 민중을 믿지 않기 때문에 민중이 정치를 또 믿지 않고 그러기 때문에 도둑질이 되고 폭력이 나오고 전쟁이 터진다.”라고 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평화운동을 일으킬 가장 좋은 때이다. 갈등과 폭력이 난무하는 지금이 그때이고, 세계적으로 정치가 탐욕과 타락의 극에 달하고 있는 지금이 평화운동이 절실한 때라고 할 수 있다. 누구 탓할 것 없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평범한 민중, 씨알이 가지고 있는 평화의 정신을 믿고, 하늘을 믿는 신념을 가지고 나설 일이다. 생명의 진보와 진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 평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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