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그들의 현재를 우리의 미래로’ 유럽 농촌마을 기행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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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그들의 현재를 우리의 미래로’ 유럽 농촌마을 기행 ②
  • 편집부
  • 승인 2015.06.3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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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농가민박의 개념은 철저하게 휴양에 목적이 있었다. 체험이니 관광이니 하는 우리의 개념과 차이가 크다. 1박 손님은 잘 받지도 않는다. 손님의 8할이 단골이며 도시의 사람들은 대를 이어 같은 농가를 찾아 휴양을 즐긴다. 왕래가 잦으니 먼 친척 보다 낫다. 이는 일본의 개념과 유사하다. 도시의 아이와 농촌의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주 만나서 짝이 되는 일도 많다 하니 그 왕래가 어떠한지 알만했다.

농가는 저녁식사는 제공할 수 없다. 지역의 식당과의 공생 때문이다. 주변의 상공인들, 호텔업자들은 농민들에게 항상 무척 감사하고 있다. 방문객 유치의 힘은 경관을 보존하는 농민들의 역할 때문이기에 상공인들의 재원으로 지역의 농민들을 위해 농산물직판장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식당과 호텔은 생산자 표시 로컬푸드 식재료 사용을 자랑스러워하며 그것들만 고수한다. 농산물을 고소득 블루오션으로, 건강 기능성 농산물 등으로 홍보하는 것을 얼마나 천박하게 여길텐가. 아니 전혀 이해를 못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건강은 좋은 농산물을 골고루 잘 먹으면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아버지 때 할아버지 때 심어놓은 사과나무 한그루 쉬 베지 않는다. 농작업에 걸리적거리기도 하거니와 오래된 나무의 과일은 따먹지도 않지만 그것을 보존해야 한다는 철칙이 있다. 오래된 나무 한그루 마저도 경관이자 문화로 바라본다. 또한 다양한 동식물의 보전과도 관련을 짓는다. 이미 60년 전에 갖춰진 정책이다.

우루과이라운드 당시 국제적인 압박으로 농업보조금 지급 금지를 강요 받을 때 독일과 아울러 이들은 농업보조금이 아니라 '문화경관'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라 선언하며 그들만의 구실로 대응을 했으며 이내 국제적 압력을 이겨냈다. 나무 한그루, 농촌의 경작지 곳곳이 바로 문화경관으로써 보존해야 할 그들의 근거를 법으로 명확히 해버린 것이다. 농업 자체가 문화라는데 어찌할 것인가!

Agriculture(농업)라는 활자 속에 깃든 문화의 어원을 있는 그대로 실천한 것이며 현대적 통찰력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농민은 생산자이면서 지역문화 기획자이자 해설사, 관리자로써 자연스럽게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근현대 경제발전 속에서 철저히 저평가되고 희생된 우리 농업, 농민의 의미가 작금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다시 융성, 아니 유지라도 될 수 있겠는가?

0527-김훈규-오스트리아 엘마우 농가민박 아래 초지의 젖소들




지금 우리는 ‘땅 없이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 ‘식물을 공장에서 키우듯 해야 한다’, ‘마을 마다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권역별 마을별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도시민 유치를 통해 또다른 활력을 만들어야 한다’, ‘폭발적인 귀농귀촌을 통한 인구유입으로 농촌마을을 재생해야 한다’, ‘6차 산업의 전초기지로 농가소득의 혁신사례를 구축해야 한다’, ‘억대 몇명, 5천만원 소득농가 몇 명’ 등등 여전히 숫자와 실적 놀음으로 서류 만큼 쌓이는 불신과 도시소비자의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인식 부족, 농민 스스로의 철학적 부재로 인해 혹시나 더 힘들어 하고 있진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나 또한 문제의 중심에 서 있으니 더욱 우울하기만 했다.

스위스의 농가 규모는 전체의 4% 미만이다. 빵이나 우유 등 농산물을 주원료로 하는 제품들이 EU 국가들 보다 다 비싸다. 경쟁력이 적은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EU에 가입하지 않는다. 이유는 농업과 농업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 한다. 고속도로 과속 규정의 속도까지 결정하는 장관회의에서 그들은 농업보호를 위한 각별한 결정을 했다. 바로 전통방식의 농경과 목축에 대한 존중 부분이다. 초지와 농촌경관에 대한 관리인은 농민이며 전세계 모든 부자가 다 와도 스위스에서는 돈자랑을 못하는 절대적인 경관을 유지하는 주역을 바로 농민으로 규정했으며 모든 국민산업의 기본은 농업이라는 인식을 전국민이 공유하게 한다.

음식점, 빵집 등의 농산물을 원재료로 하는 모든 산업, 비료, 농기계산업 등 농업을 위해 존재하고 기여해야 할 산업 등 농업의 전후방사업을 '그린섹터'라 지정하고 다른 모든 산업 보다 그린섹터가 가장 큰 규모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국민 10명 중 6명은 그린섹터에 종사하는 것으로 판명했다. 농업자체는 GDP 대비 1%도 되지 않는 규모지만 전후방을 다 합친 그린섹터는 어마무시한 역할과 사회적 기여를 한다고 말한다.

아스팔트 농사 아니면 서류농사만 뼈 빠지게 짓는 한국농민. 그 서류농사 마저도 여의치 않는 처지가 안타까울 뿐이다.

스위스 아름다운 모든 경관의 수호와 관리는 농업인의 지속적인 농사를 통해서만 가능해졌으니 그것을 유지해 준 농민 모두에게 국가는 깊은 감사를 표하고 문화와 전통, 교육과 먹거리순환 등의 가장 중요한 곳으로는 이제 농촌이 아니고는 불가능 하다는게 저들의 생각인 듯하다.

그리고 그들은 말했다.

"우리가 농촌을 지키면 농촌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8박 10일 간의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만감이 교차를 했다. 갈 때보다 짐이 무거운 건 구입한 선물이 많아서가 아니고, 노트 두권에 복잡하게 쓰여진 먹물 때문인지, 아니면 밖으로 쏟아내고 정리해야 할 꺼리들 때문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농업연수라는 이름으로 저들의 문화, 예술, 지역, 마을, 공동체, 농전시스템, 건축, 언어, 음식, 철학, 생태 등등 너무나 복합적인 이야기를 보고 듣고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책 수십 권의 값어치를 한꺼번에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을 해서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에 창밖으로 우리의 산천을 바라봤다.

‘아! 논마다 물을 받아뒀구나. 그리고 그새 모를 많이도 심었구나. 농로를 따라 전봇대는 늘어섰고 철길 주변 따라 농촌 곳곳엔 철거와 콘크리트의 상징, 고물상과 레미콘 공장은 자주도 보였다. 솟은 것은 산이고 틈만 있으면 하얀 비닐하우스 지천이구나. 마을 군데군데 농공단지 공장건물은 삭막하고 복잡하게 얽혀있고 쭉 가다 산이 막으면 여지없이 둘로 쪼개 도로로 밀었든지 터널로 뚫었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가장 집약적인 소득을 올리기 위해 우리의 농촌은 오랜 세월 앓고 곪고 흐트러졌겠지. 눅눅한 안개가 스며들듯 기차의 차창 시야를 가리지만 그래도 여기가 아스라이 참 좋구나. 내나라 내땅......’

농촌마을의 대명사를 어떻게 만들어갈꼬 하는 신나는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지만, 이미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하나의 상징이 되고 농촌지역과 마을과 농장의 초입 마다 경고현수막과 소독시설이 흉물스런 상징이 된 현실은 가슴 아프기만 했다.





(… 끝 …)





김훈규-web




* 김훈규 - 거창군농업회의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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